거짓말처럼 칼로 자르듯이 난마돌이 지나간 뒤 백만 마리의 매미가 우는 소리가 싹 없어졌다. 난마돌이 오기 직전까지 매미들이 꺼질세라 서럽고 웅장하게 울어댔는데 태풍이 지나간 뒤 모든 매미의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매미는 매년 여름이면 나타나지만 울음소리는 매년 점점 작아지는 것 같다.


역시 거짓말처럼 하늘도 구름도 모두 형형색색의 가을의 옷을 입고 컬러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그 모습이 요즘 말로 킹 받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빠질 것 같고, 드디어 코 끝이 간질간질 거리며 손바닥에 다한증이 생기는 것을 보면 계절 때문에 호르몬의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인간에게 에너지를 조금씩 야금야금 뺐어가서 자연은 가시광선으로 모든 컬러를 아름답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그런 가을의 맑고 투명하고 형형색색의 컬러를 보고 있으면 열이 받는다.


그럴 땐 아무 말 없이 역시 달리는 것이다. 조깅을 하는 것이다. 나는 보통 한 6킬로미터 정도를 달린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 중간에 근력 운동을 한 2, 30분 정도 이를 악 물고 하니까, 그 정도의 조깅에 그 정도의 근력 운동이면 나와 타협을 봤다고 생각한다. ios16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나니까 난데없이 생긴 어플로 거리를 재어보니 내가 매일 달리는 거리가 거의 10킬로미터 정도 되었다. 그날그날 다르지만, 그 코스 안에 계단도 있고, 오르막길도 있고, 종합 운동장의 트랙도 있다. 4계절에 상관없이 조깅을 하는 동안에는 당연하지만 호르몬의 변화 같은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조깅을 주로 해가 퇴근하고 난 뒤 달에게 하루를 반납하는 밤에 한다. 요즘은 말 그대로 가을밤인 것이다. 은행이 온 거리에 떨어져 자칫 잘못 밟아서 종아리에라도 튀면 낭패다. 가을밤이다. 예전 유열의 노래 중에 ‘가을비’라는 노래가 있다.


그리움에 관한 노래다. 나를 떠난 그대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리워한다. 가을에 슬피 울며 떠난 그대가 그립다. 노래는 죽 이어지다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 전에 마음을 적시는 가사와 노래가 이어진다.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난 모든 것을 단념하고 돌아섰지만’

그리고 클라이맥스 부분이 흐른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나는 그대를 이토록 못 잊어

 빗줄기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흐느껴 우네’


https://youtu.be/GcGYk3isfUg


만약 그대와 헤어지지 않고 죽 만나서 결혼을 했더라면 과연 더 나은 삶이었을까. 그때 그대가 슬프게 울며 나를 떠났기에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그대를 이토록 그리워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움이 나을까. 그리움보다 지지고 볶고 해도 매일 얼굴을 보며 지내는 게 나을까. 답은 모른다. 이 답을 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소설과 비슷하다. 어떤 이들은 소설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소설이란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하지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고로 책이 최고야,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이다.


책은 주류일까, 비주류일까. 이 가을의 초입에 한 번 생각해보자. 나는 주류일까 비주류일까.


‘헝가리 무곡’으로 유명한 브람스가 있다.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있고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의 이전작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있을 정도로 브람스는 유명하다. 브람스의 음악을 모르더라도 ‘헝가리 무곡’은 들어보면 누구나 아 하며 고개를 끄덕할 것이다. 헝가리 무곡은 집시 곡이라고 불린다. 집시는 이집트에서 온 놈들 아니야?라고 하는데서 ‘이’ 짜가 빠지고 ‘집’ ‘짖시’라고 불리다가 ‘집시’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바이올린 선율이 좋은 곡으로 마치 브람스가 늘 입고 있던 갑갑한 양복을 벗어던지고 캐주얼한 옷을 입고 연주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로 하면 깽깽이라고 보면 되겠다. 헝가리 무곡을 검색해서 보면 온통 바이올린이다. 바이올린 수십대가 헝가리 무곡을 연주한다. 그래서 정말 멋진 선율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 헝가리 무곡은 브람스의 대표작인데 브람스가 작곡한 곡이 아니다. 19세에 연주여행을 떠난 브람스의 여행을 레메니가 주선을 했는데 레메니가 브람스에게 집시음악을 소개해줬다. 좀 더 파고들면 레메니가 자신의 곡을 브람스가 훔쳤다고 고소를 했다.


악보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레메니는 헝가리 무곡이 브람스가 뻔뻔하게 뺏겼다고 주장을 했다. ‘바르파를 기리며’는 헝가리 무곡과 아주 흡사하다. 거의 일치되는 연주를 볼 수 있다. 브람스도 헝가리 무곡을 편곡으로 발표했다. 어떻든 이를 발굴한 브람스가 있었기에 비로소 헝가리 무곡이 탄생이 된 것이다. 레메니가 화낼만하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창작이냐 도용이냐, 사람들은 말하기 시작했다. 헝가리 무곡이 다른 작곡가의 곡인 줄 몰랐다. 깐깐하고 고지식하지만 사려 깊은 사람이 브람스였다. 악보가 팔릴 줄은 또 몰랐던 것이다. 헝가리 무곡이 팔리면서 베토벤의 후계자라고 불릴 정도였다. 브람스는 소심하고 겁쟁이에 콤플렉스가 심했다. 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브람스는 천재에 가깝다.


13세에 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15세부터는 아예 음악교육은 받지 못했다. 싱코페이션. 건너뛰고 꾸밈으로 가득 들어차 있는데 이 곡은 독일식의 음악으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으로 이 곡은 재즈로도 연결이 된다. 시장적 정서가 발하는 헝가리 무곡의 바이올린은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면서 연주를 할 수 있는 곡이라고 한다.


https://youtu.be/vOUCb167iho


브람스가 왜 천재로 통하냐면 창작과 도용을 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헝가리 무곡이 중요하다. 민속음악의 체계화가 된 곡이 되어 버렸다. 당시에는 피아노 보급이 잘 된 시기였다. 전문 연주가들이 아닌 일반인들이 잘 연주하게끔 만들어진 곡이었다. 두 손이 아닌 네 손이 연주하기 편하게 만들어진 곡이었다.


비주류 음악을 주류 음악인 클래식 곡에 집어넣은 곡이 바로 헝가리 무곡이었다. 이후 체코의 드로르자크 같은 민속 음악가들이 나오게 된다. 오늘 같은 날 기도를 한 번 한 다음 눈을 감고(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헝가리 무곡을 들어보자. 그러면 확실히 헝가리 무곡에 깔린 세계가 상상 속에 나타난다. 주류 속에 살고 있는 비주류를 생각하게 된다. 바야흐로 가을인 것이다.


난마돌이 오기 직전 몇 시간 전


북서쪽 하늘이 온통 붉은색이었다


태풍을 취재하기 위해 나온 KBS팀


동쪽 하늘인데 나와서 조깅한 지 30분 만에 비바람이 엄청나서 돌아옴


마그리트가 그렸나


온통 마그리트 마그리트


트랙을 조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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