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영화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아포칼립스가 도래한 세상에서 대형 마트에 가서 실컷 장을 보는 장면이 있다는 것이다. 담고 싶은 식료품을 마음껏 담는 장면이 있고 그 장면 속 주인공들은 아주 행복한 얼굴이다. 왜 이런 장면이 좀비 영화에 공통적으로 있을까. 그건 세상이 망해서, 그래서, 비로소 주인공들은 즐거운 여행을 한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studio JUN https://blog.naver.com/wsj1060/60209866095
그러니까 영화 행오버 1편을 보면 세상 범생이 스타일인 스튜가 제일 병맛으로 맛이 갈 때까지 가서 그날 밤 바로 댄서와 결혼도 해버리고 이빨도 하나 부러진다. 일탈이라고는 전혀 하지 못할 것 같았던 스튜가 한 번 일탈의 맛을 알아버리니 완전한 자유한 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이런 액스터시 같은 일탈을 꿈꾼다. 영화는 그런 만족을 준다. 좀비 영화 속 마트 속을 터는 장면은 그런 대리 만족을 가지게 한다.
좀비 영화 속 주인공 각자는 평소에 하찮고 쓸모없는 인간일지라도 다양하기 때문에 그 다양함으로 나중에는 좀비들을 물리치거나 좀비들 사이를 뚫고 탈출한다. 좀비 영화를 보면 그렇다. 기묘하지만 어느 나라든 좀비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서민들이다. 부유층이 없고 평소에 마음껏 쇼핑 같은 쇼핑도 하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주인공들이다. 실제로도 이 좀비라는 카테고리에 좀비를 빼버리고 바이러스, 즉 코로나를 집어넣어도 궁지에 몰리는 사람들은 서민들이다. 그 카테고리에 홍수나 천재지변을 넣어도 똑같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얼마 전까지 당했다.
좀비 영화 속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는, 인간들이 좀비가 되어서 텅 빈 마트를 쓸어버리면서 술을 담는 주인공도 꼭 한 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마셔보지 못한 술을 따서 마시며 망한 세상에서 행복함을 느낀다. 좀비 영화의 명작이라는 ‘28일 후’에서도, ‘좀비랜드’에서도, 새벽의 저주는 아예 마트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트란 그런 곳이다. 마트는 재미있는 곳이다. 마트에 가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마트에 가면 뭐든 다 있으니까. 눈으로 보도 즐기도 만지고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있으니까 즐겁다.
코로나 전에는 명절이 다가오는 연휴기간에 대형 마트에 가는 재미가 좋았다.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많으면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좋다. 딱히 살 것도 없지만 쇼핑 커트를 드르륵 끌며 싸구려 와인 몇 병을 담고, 치킨이나 시간 임박한 연어초밥만 담아서 넣고 액자와 그릇들을 둘러보고 어항 코너에 가서 물고기를 실컷 구경하고 일행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냠냠 먹으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재미가 있었다.
여름에 가면 시원해서 좋고, 겨울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재미있고 밤에는 이상하지만 과일코너에 시원한 연기가 더 많은 것 같아서 좋고. 아무튼 마트에서 그로서리 쇼핑을 하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대형마트나 극장은 전국 어디를 가나 비슷하니까 다른 지역에 가서도 마트 쇼핑을 하는 동안에는 여행 중이라는 걸 잊어버리고 있다가 마트를 나오면 낯선 풍경에 아, 맞다 우리는 지금 여행 중에 마트에 들렀지, 하게 된다.
마트에 가면 마트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켜켜이 쌓인 물건들을 볼 수 있다. 특히 라면이 쌓여 있는 모습은 가히 경이롭다. 가만히 서서 영화에서 처럼 저 쌓여있는 물품을 한 번에 쓰러트렸으면 얼마나 마음이 뻥 뚫릴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자동차를 확 몰고 와서 쾅! 하고 물건을 쓰러트리거나, 빌런을 잡으면서 획 같이 몸을 굴려 물건을 쾅! 하며 쓰러트리거나. 그런 생각만으로도 묘한 쾌감이 들었다.
도미노의 재미도 어렵게 어렵게 쌓아 놓고 한 번에 다 무너트리는 그 재미로 하는 것이다. 볼링도 비슷하다. 핀이 넘어지는 소리가 더 클수록 기묘하게도 쾌감이 더 든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마트에 가면 서적 코너가 있어서 스쳐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마트에 거의 가지 않게 되었다. 필요한 물품은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버리니까 마트에 갔다 오는 시간이 절약이 된다.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다니. 참 놀라운 세상에 살고 있다.
좀 엉뚱한 소리를 하면 좀비물이라도 좀비에게 물려서 죽고 난 뒤에 좀비가 되는 영화가 있고 - 요컨대 월드 워 z가 있고,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처럼 좀비에게 물려서 좀비가 되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에 의해 인간인 자체로 좀비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좀비가 더 무섭고 더 치명적일까. 그리고 물려서 환지통을 앓다가 죽고 나서 좀비가 되는 게 덜 불행한 일일까. 서서히 극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점점 인간인 자체로 좀비가 되는 게 덜 불행한 일일까. 좀비 영화들을 보다 보면 그런 게 눈에 보인다.
요컨대 요즘은 좀비에게 세계를 내준 흡혈귀, 드라큘라와 뱀파이어도 그렇다. 생각해 보면 드라큘라와 뱀파이어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불멸한다는 것은 같지만 어쩐지 드라큘라와 뱀파이어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드라큘라와 뱀파이어가 영화가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라는 걸 소거하고 한 번 보자. 그렇게 놓고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뭐 정말 엉뚱한 소리였다.
대형마트와 대형마트의 사이가 꽤 먼 거리다. 그러니까 대형마트에 오는 지역주민들의 수만 놓고 보면 유동인구가 많다는 말이다. 이 많은 유동인구가 전부 대형마트에 오는 것은 근래에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 아파트 단지에는 중형마트(홈마트, 현대마트 같은)가 있고, 골목 사이사이에는 또 편의점이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 쇼핑몰의 발전으로 오전에 주문하면 저녁에 배달을 해 주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 배송이 가능해져서 대형마트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거의 모든 마트와 편의점에는 매달 신상품이 쏟아지고 전문 유튜버가 리뷰를 하고 있고, 행사도 매주 하고 있다. 그래서 대형마트도 현재 뭔가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형마트에서는 분기별이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트 앞의 조그만 광장이나 1층 실내의 한 공간을 리뉴얼을 해서 무대 공간으로 만들어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다. 분기별이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길거리 노래방 같은 것을 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노래 한 곡 정도는 잘 부른다.
그저 길거리 노래방을 할 때마다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걸고 등수를 매겨서 등수에 오른 사람들을 다시 연말에 모아서 크게 판을 벌이는 것이다. 그래서 3등까지 오른 주민은 마트가 속해 있는 계열 차원에서 전문적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밀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온라인 속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사람들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실컷 떠들고 나니 역시 엉뚱한 소리였다.
마트는 나의 문화권 안에서, 내가 움직이는 활동반경 내에서 아주 즐거운 곳이었는데 한 번 꺾여 버린 재미는 다시 들지 않는다. 요즘은 급하게 구입할 것이 있어서 정말 급하게 들러 급하게 구입해서 나오는 곳이 되었다 [사실 이 부분도 급하게 무엇을 구입해야 하는 물건은 대형마트보다는 다이소에 가면 다 있어서]. 모든 것은 그렇게 변하는가 싶다. 하지만 변함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