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밥상에 다리가 하나 없는 문어가 통으로 올라왔다. 다리가 하나 없는 채 잡힌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 떠오른다. 간장게장이 된 살아있되 죽어가는 엄마 게가 꿀렁꿀렁 살 속으로 스며드는 간장 속에서 알을 품으며 이제 잠잘 시간이라고 나지막이 말해주는 그 시가 떠올랐다.
문어는 가두리가 안 되니 죽창이나 통발을 던져 잡아야 한다. 똑똑한 문어는 사람들이 자꾸 잡으러 오니 제 살 곳을 버리고 더 깊은 곳으로 바위 사이를 파고들었다. 꿈틀거리며 비집고 들어가 몸을 말고 뱃속의 새끼를 움켜잡았다. 해수의 영향으로 차가워진 바다가 바위 사이에 스며들었다.
문어는 바다의 수온이 차갑게 변하면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차가워진 바닷물이 몸을 덮치면 깜짝 놀라 움직이지 못하고 몸을 더 단단하게 말고 가만히 가만히 새끼들을 부여잡는다. 바다는 더 차갑게 변한 얼굴로 문어를 덮는다.
꾹꾹 저며오는 기나긴 파랑.
문어는 먹이도 먹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 채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문다. 그러다 문어는 뱃속의 새끼들을 생각한다. 움직일 수 없는 문어는 자신의 다리 하나를 떼서 먹으며 새끼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 차디찬 바닷물이 물러갔을 때 문어는 파란 하날을 본다. 다리가 하나 없는 채 밥상에 오르는 것이다.
문어는 푹 익히면 질겨진다. 박찬일 요리사의 책에 문어는 슬쩍 덜 삶아서 근조직은 부드러워지고, 탱탱한 문어의 맛은 살려주는 게 문어 삶기 선수의 특징이라고 했다. 문어는 스테이크보다 익히는 기술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해물은 조직이 연해서 타이밍을 놓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완전히 익어버리고 만다.
고기 맛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문어를 자주 먹어본 사람은 동해 돌문어를 수입산 문어 맛과 구분한다. 그러나 이제 돌문어가 씨가 마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밥상 위의 모든 문어가 수입으로 가득 찰 날이 멀지 않았고, 그날이 서로를 미워하고 아이들이 아토피 같은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도래하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
뼈 없이 살을 지탱하며 부력을 죽도록 견뎌 수심이 깊은 곳으로 기어들어가 안식을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현듯 지상을 만난 문어의 꾸물거림을 우리는 소중하게 생각한다.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새끼를 지키려 제 다리를 뜯어먹으며 삶을 견뎌온 문어의 생을 존중한다.
생을 위한 안타깝고 우아한 움직임도,
눈이라 부를 수 없는 검은 점과 흡착을 위한 문어의 발판도,
내 안에서 희망으로 꿈틀거림을 기억한다.
음식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해졌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다. 슬프고도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