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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혜린의 글 중에서 이 부분을 가장 좋아했다. 전혜린이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행복했던 때의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젊었고 대체로 행복했다. 먹거나 입는 것보다 책을 사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을 중시하고 좋아하는 우리의 근본적 공동 요소는 그대로 허용되고 유지되었다. 그 점에서는 우리는 언제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가령 수입의 반을 넘는 책 한 권을 사기를 우리는 한 번도 주저해 본 일이 없다.

 그 대신에 언제나 가난했고 가난이 우리에게는 재미있었다]라고 전혜린을 말했다.


이 부분을 그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책이 좋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책을 보는 그에게 전혜린의 이 행복이 그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그는 가난하더라도 이렇게 책을 구입할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책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가난해도 정말 행복하겠구나, 상상을 했다.

 

 전혜린은 프랑스와즈 사강의 글을 읽고 그 글에 대해서 남편과 이야기를 하고 남편은 그 글을 한국에서 출판할 수 있게 도와주고. 가난해도 이렇게 지낼 수 있다면, 이런 일상이라면 그는 죽음이 온다고 해도 슬퍼하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전혜린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 가난하게 보냈던 그는 다시 가난해지는 것이 너무나 불안하고 무서웠다. 그는 요즘 흔히 소재로 등장하는 ‘단칸방’에서 가족이 지냈던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떠올린 기억 속에서 그는 가난 때문에 불안하거나 싫어하는 모습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역시 그때에는 몹시 어렸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전시 속 포화가 터진 건물에서도 재미있게 놀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가난이라는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매일매일 재미있게 지낼 뿐이다. 누군가 너 가난하구나,라고 욕을 하지도 않고 친구들과 놀다가 넘어져 피가 철철 나도 그때만 아파서 울 뿐, 또 조금 지나면 멈출 줄 모르는 기계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 가난이란 책 속에서처럼, 상상 속에서처럼 가난해도 괜찮지 않았다.

 

그는 겨울에 수입이 확 줄어들어 난방을 못 한 적이 있었다. 집에 난 방을 못하니 너무 추워서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옷을 아무리 많이 껴 입어도 좀체 나아지지 않았고 위스키를 있는 대로 마시면서 밤을 지새웠다. 가난은 쪽팔리는 게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고 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불편해지면 가난이라는 건 어느새 날카롭게 바뀌고 만다. 그는 그 사실이 무섭고 두려웠다.


부부가 가난하면 그 가난을 재미있게 보내는 게 아니라 가난 때문에 부부는 서로 싸움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수입의 반이 넘는 돈으로 책 한 권을 구입하는 것을 반기는 사람은 요즘에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설령 책벌레라고 불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요즘처럼 고도의 산업화 시대(이런 말도 이미 20년 전부터 시작되었지만)에 가난한 사람을 없애고, 모두가 평등한 생활이 가능한 나라로, 같은 말을 정치인들은 늘 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이런 말들을 믿지 않았다.


분명 사회는 고도화를 넘어 초고도화가 되었고 기본금이라든가 소득이 올라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생활고로 죽는 사람은 매년 더 늘어가는 분위기다. 사람이 가난 때문에 내몰려서 결국은 죽음으로 가는 현상은 아주 오래전 5, 60년대의 일로만 여겼다. 그는 오늘도 책을 손에 들고 읽고 있다. 예전만큼 책을 읽어도 썩 행복하지 않다는 기분이 드는 건 책 속으로 들어갈수록 가난과 자꾸 가까워지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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