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내리면 강변의 조깅 코스에 사람들이 소거된 것처럼 보인다. 비가 와도 조깅 코스에 몇 명은 나와서 슉슉 숨을 뿜어내며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는데 지정할 수 없는 비가 내리면 이렇게 사람들이 전부 약속이나 한 듯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바글바글거리는 도심지 속에서 아무도 없는 강변에 있으면 마치 초현실 세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구가 120만 명이나 되는, 어딜 가나 인간들이 바글거리는 도시에서 이렇게 거짓말처럼 인간이 쏙 빠져버린 공간에 서 있는 기분은 마치 달리의 그림 속에 와 버린 것 같다.


영화를 찍는다면 바로 지금 여기서 촬영을 하면 좋은 그림이 나올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억지로 비켜서게 하지 않아도 되며 모두가 촉촉이 젖은 가운데 영화 촬영이 시작되면 모두가 그 장면에 그대로 몰입할지도 모른다. 초현실 세계에 온 것처럼.


라디오를 듣는데(나는 라디오를 참 많이 듣는구나)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찍었다는 학생의 이야기가 나왔다. 학생은 마스크를 벗고 졸업앨범을 찍는데 반 친구 중에 몇몇 친구들의 얼굴을 그대로 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도 뭔가 부끄럽다며 졸업앨범 사진을 찍은 사연이 소개가 되었다. 마스크를 제거하면 친구들에게 민낯을 보여줘야 해서 부끄러워하는 게 지금의 세계다. 우습지만 이게 초현실이 아니고 무엇일까.


배추가 9,500 원하는 현실이다. 초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인간이 바글거리는 도심지 속에서 아무도 없는 강변을 거닐어도 이상하게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초현실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을 벗어난 것이 초현실, 상상과 판타지의 세계가 초현실인데 이미 판타지인 것이다. 그래서 그래픽이 왕창 들어간 판타지 영화가 나와도 사람들은 시큰둥할 뿐이다.


앙드레 브레통이나 도라 마르가 살아서 지금 세계에 온다면 화들짝 놀라며 신나서 작업을 했을지도 모른다. 미래는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굉장하구나, 온통 재미로 가득하구만. 하면서 미친 듯이 초현실 사진을 찍고, 초현실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도라 마르의 애인이 한 때 피카소였는데 처음에는 거장이라 말도 못 붙일 정도로 쭈뼛거렸다가 시인 폴 엘뤼아르 덕에 피카소를 만나게 되고, 피카소는 지적이고 아름다운 도라 마르에게 반하게 된다. 도라 마르는 아주 미인이다. 두 사람은 10년 정도 불같은 연애를 하고 헤어졌는데 피카소에게 도라 마르가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당신은 위대한 예술가 일지 모르지만 당신은 인간쓰레기예요]


그 덕인지 도라 마르는 죽을 때까지 초현실 그림을 그렸다. 도라 마르가 지금 잠에서 깨어나 여기에 온다면 기뻐서 초현실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런 세상에 우리는 지금 발을 땅에 딛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열심히 버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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