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뇌를 통하면 네트워크의 망을 타고 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나누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전뇌를 통하면 인체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다. 네트워크를 통해 빛처럼 그곳에 도달할 수 있으며 사람과의 접촉도 네트워크로 하게 된다. 아이도 가질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교접의 형식으로 낳은 아이가 아니라 하나의 정보 덩어리나 네트워크의 모듈의 형태로 태어나게 된다.


전뇌를 만들어낸 것은 공각기동대 쿠사나기 대령을 탄생시킨 오시이 마모루였다. 그는 앞으로의 먼 머래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더 이상 육체적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영화 ‘루시’에서 루시가 뇌를 100% 사용하게 되었을 때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가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네트워크 자체가 된다.


이런 관계는 인간적이지 못하고 그런 미래는 없다고 치부하지만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모든 신체기관이 멈춰있고 뇌의 사용만 가능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부분으로 섹스를 대신할 수 있는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 주위에는 장애 때문에 비극적인 삶을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반대로 말을 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지금 현재 육체적 접촉을 하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이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이 나에게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저 로봇처럼 수동적으로, 내가 키스를 하는데 이 사람의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에 손상을 받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뇌’다.


작별인사 속에는 블레이드 러너의 이야기가 나온다. 블레이드 속의 휴머노이드 즉 레플리컨트는 인간과 똑같이 사고하고 감정, 기억 그리고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인간이 수명을 4년으로 제한해놨다. 6명의 레플리컨트들이 수명이 너무 짧아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지구 밖 오프 월드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지구로 잠입을 하는데 그중에 4명만 지구에 들어온다.


블레이드 러너 속에서 과연 인간이 휴머노이드, 레플리컨트보다 낫다고 할 수 있나 하는 것이다. ‘죽음’보다는 ‘제거’, ‘고친다’보다는 ‘수리’로 표명되는 레플리컨트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건 결국 인간인 데커드(헤리슨 포드)다. 데커드와 사투 끝에 데커드의 총에 맞은 프리스(레플리컨트)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고통스러워한다. 어째서 인조인간이 총을 맞고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할까.


영화 속에서 소름 끼치게 아름다운 것은 인간보다 인간다웠던 레플리컨트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인간을 죽이고 돈을 뺐고 아무렇지 않지만 레플리컨트는 동료가 죽자 괴로워하고 살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래플리컨트 로이는 인간인 데커드를 구해주고 “나는 네가 상상도 못 할 것들을 봤어, 오리온 전투에도 참가했었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빛으로 물든 바다도 보았지. 이제 그 모든 순간들이 시간 속에서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으로 간다.


김영하의 장편소설 ‘작별인사’에서도 철이가 인간 세계에서 나와서 휴머노이드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관계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 관계 속에서 과연 인간이 인간이 만들어낸 휴머노이드보다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달마라는 휴머노이드가 철이와 선이에게 ‘고통’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이 정말 좋다. 즉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고, 고통을 두려운 무엇으로 여기지만 ‘고통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니다’라고 달마는 설파한다. 고통이라는 것은 생물체를 보호하는 필수적 장치다. 고통을 느껴야 위험을 피하고 자신을 지키려 한다. 인간이 사고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달마라는 휴머노이드가 사고한다.


고통 그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마주할 고통에 대한 내성을 가지게 된다. 이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사고하게 해 주었다. 물론 이런 미래적 디스토피아 스토리텔링을 좋아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에 몰입이 되었다.


김영하가 좋은 점은 작가의 말에 달마와 선이의 대화는 윤리학자 누구의 무슨 책을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요즘 온통 표절시비에 얼룩진 가요계도 이렇게 밝히고 음악을 한다고 해서 누가, 나무라는 사람이 없을 텐데.

작별인사를 읽으니까 넷플릭스 ‘나의 마더’와 무라카미 류의 ‘노래하는 고래’가 떠올랐다.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에서 인류는 사라지고 인간은 로봇에 의해 길러진다. 마더라는 로봇에 의해서 학습을 하고 댄스, 의학, 역사를 배운다. 류의 '노래하는 고래'는 2012년쯤에 나왔는데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잘 않나지만 시대적 배경이 올해, 2022이다. 암울한 미래의 내용을 무라카미 류 식으로 풀어낸, 나에게는 조금 어려웠던 소설이었다. 나의 마더에서도 노래하는 고래에서도, 아무튼 어떻게 보면 미래에서 작별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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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7-16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교관님 여길 떠나시겠다는 줄 알고 순간 덜컹했습니다.ㅋㅋ

교관 2022-07-17 12:00   좋아요 1 | URL
아이쿄 주위에서도 떠난다고 하면 말리지 않는데 ㅋㅋㅋ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