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독립영화로 이런 발상으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재미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듣고 있는 노래가 있는데 그게 윤시내 노래와 저짝 천조국의 조니 미첼과 제니스 조플린이다. 이 가수들의 노래는 오래되었는데도 정말 기가 막히게 좋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세상에 그런 노래가 있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가수들이다. 나는 음색이 좋은 가수에게 계속 끌리고 그들의 노래를 듣는 걸 좋아하는데 조니 미첼과 윤시내가 그렇다. 제니스 조플린의 목소리 음색은 말 다 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서도 제니스 조플린의 방귀 소리는 쉿소리가 날 거야,라고 했을 정도로 음색이 강했다.
제니스 조플린의 그 주렁주렁 스타일과 패션, 그리고 헤어 같은 모습은 지금까지 많은 예술가 내지는 가수들이 따라 하고 있다. 그 자유분방함과 뿜어내는 울분 같은 것들의 관념들, 총과 칼을 음악으로 밀어낼 수 있다고 진정으로 믿었던 아티스트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니스 조플린은 '헤이 죠'를 연주한 지미 헨드릭스처럼 28살 꽃다운 나이에 가버리고 말았다. 묘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커트 코베인 역시 28살에 짧은 삶을 마감했다.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한 번에 확 피었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조니 미첼과 윤시내는 지금까지 우리 곁에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물론 조니 미첼의 건강이 안 좋다는 소리가 몇 해 전부터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에 비하면 윤시내는 우리가 정말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예술가이자 아티스트이자 대중가수다. 이런 수식어를 아마도 부담스러워하겠지만 그렇게 부르고 싶다. 윤시내는 인기가 정말, 아주 많다. 인기에 비해 티브이에 자주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윤시내의 팬들은 전국 방방곡곡 구석구석 퍼져있다.
윤시내의 노래 중에 ‘고목’이라는 노래가 있다. 아마 이 노래는 저짝의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비비 킹이나 블루스의 신이라 불리는 애릭 클랩튼도 앞 줄에서 차렷, 열중 쉬어, 차렷, 쉬어해서 입을 아 벌리고 듣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놀랄만한 블루스다. 노래를 이렇게 부를 수 있다니, 그런 생각을 들을 때마다 하게 된다. 내가 사는 곳은 바닷가이고 방파제가 있다. 이곳에 겨울의 끝물에 나가면 봄의 햇살이 따스하리 내려앉는, 시리고 차가운 겨울 속을 젤리처럼 벌리고 나온 선물 같은 날을 만날 수 있다. 조금은 슬퍼 보이는 바다를 보며 우리는 윤시내의 ‘고목’을 듣기도 했다. 윤시내의 노래가 이렇게 멋졌어요?라고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가사 중에 블루스를 이렇게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가수이지 않을까. 그때 방파제의 바다도 블루스적이며 하늘도 블루스적이다. 역동하지 않고 생과 사의 경계도 알 수 없는. 그저 블루스적인 모습과 블루스적인 냄새를 낼 뿐이다. 여기에 어울리는 건 블루스적인 윤시내의 고목뿐이었다.
윤시내가 티브이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그 춤은 춤에서 벗어난 표현의 한 부분이자 예술의 모든 것이다. 윤시내의 동작을 보면 백남준이 건설했던 독일의 플럭서스가 떠오른다. 규정적이지 않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지만 누구도 똑같이 따라 할 수 없다. 실험이며 변화를 받아들이고 변화를 꿈꾸는 듯한 춤. 동작. 행동. 그래서 윤시내만이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그런 윤시내가 공연장에서 공연 시작 몇 분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윤시내와 합동 무대를 하기로 한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주인공)는 망연자실한다. 연시내로 살아가는 순이가 윤시내를 찾으러 다니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이야기는 가짜와 진짜, 진짜를 따라 하는 가짜도 빛날 수 있고, 관종 유튜버 딸과의 관계도 회복해가는 그런 일상 성장의 이야기다.
세상에는 많은 이미테이션 가수들이 있다. 진짜가 가지 못하는 곳,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이미테이션 가수들이 그 다리를 대신 채운다. 이미테이션이라고 해서 술렁술렁하거나 허술하게 노래를 부르지도 않는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진짜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피를 토해낼 정도로 노력을 한다.
윤시내가 사라진 발상은 영화적으로 좋다. 영화에서는 윤시내 이미테이션들이 여럿 나온다. 연시내, 윤신애 등. 그들 모두가 하나씩의 사연이 있고 고민을 가지고 있다. 사실 순이가 연시내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만 우리 모두 가면을 쓰고 매일매일 보내고 있다. 회사에서는 부장이나 대리 또는 말 딴 직원으로 굽신거리며, 학부형으로, 인사 잘하는 카페 손님으로, 자신을 숨기며 가면을 쓰고 이미테이션으로 살아간다.
과연 드러내고 이미테이션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가면을 쓴 사람들이 나무랄 수 있을까.
이 영화에 독립영화의 감초 내지는 히로인 김재화가 나오는데 연기가 참 좋다. 이미테이션들의 진심이 비죽비죽 비어져 나오는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였다. 영화에 실제 윤시내가 나올까 안 나올까. 나는 정말 놀라 부렀다. 윤시내는 실제로 요즘 빌리 아일리시 음악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그리고 늘 비슷한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포기한 것들이 많다고 한다.
https://youtu.be/f1enp-uMZ3E <= 예고편
https://youtu.be/C-ZWHdSgrdA <= 고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