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의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다.



1.

소영의 아이유가 싸가지 부부에게 욕을 퍼부을 때다. 지들의 상판대기는 생각지도 않고 얼굴을 가지고 어땠네 어쨌네 할 때 소영이가 앞으로 나와서 야 이 이런 씨발 라먹을 수박 새끼들아 라고 술술 욕을 할 때 마치 소화제를 먹은 기분이다. 욕이 이렇게 듣기 좋을 수 있다니. 그동안 영화 속에서 욕은 임창정이나 조폭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는데 이거 완전 일상적인 욕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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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은 소설과 영화 속에서 양념이 된다. 과하거나 어설프게 하면 독이 된다. 덱스터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이유 중 하나도 데브라의 찰진 욕이 한몫했다. 소설 속에서도 욕이 나오면 집중이 더 잘 된다.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도, 영화 '박화영'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욕들이 파도를 이룬다. 하지만 과하지 않다.


우리는 의지와 관계없이 태어나 삶을 이어간다.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그 삶을 얻기 위해 원하지 않는 부분을 이겨냈기에 그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욕을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얻기도 한다. 욕이라는 건 나보다 못한 사람이나,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하는 것보다 영화 속 소영이가 부부에게 하는 식의 욕은 시원하다. 예전 막영(막돼먹은 영애 씨)에서 김나영이 사무실에서 갑질을 못 견뎌 부장과 까칠한 여선배에게 욕을 퍼부으며 사표 던질 때 모두가 시원했다. 욕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파고들었다. 욕 한 마디 못 하면서 사람을 괴롭히는 괴물 같은 인간들보다 욕할 줄 아는 소영이가 보기 좋았다.



2.

그다음 포인트는 소영과 상현과 동수가 우성이를 데리고 가는 중에 꼬마 해진이까지 껴서 가족 아닌 가족이 되어서 자동세차 기계를 통과할 때 실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았을 때다. 이 장면에서 괜스레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족이라는 건 가족이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고 가족을 이룬다. 그래서 가족이 아주 친밀하고 행복할 것 같지만 가족이라 더 싫고 보기 싫은 경우도 많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가족에게 다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상현도 딸과 아내에게 버림을 받았고 동수도 버려진 아이로 혼자서 지냈다. 소영 역시 자신의 아이가 자신과 같은 삶을 살까 봐 두려워 좋은 집안에 보내려 한다. 그리고 해진이는 아직 가족의 품이 그리운 나이. 엄마 아빠가 필요하지만 부모에게 버려진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다.


이들이 모여 가족 아닌 가족이 되었다. 이 가족이 세차기계를 통과할 때는 정말 행복하게 보인다. 가족 중에 어린이가 없었다면 작은 일에도 이렇게 재미있지 않을 수 있다. 지금 집에 해진이 같은 아이가 있으면 매일이 전쟁통이며 매일이 재미있고 매일이 꽃과 같을 수 있다.



3.

수진의 배두나와 이형사의 이주영이 잠복근무 때문에 꼬질꼬질 씻지 못한 얼굴로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볼 때다. 얼굴이 꼬질꼬질하다. 배두나의 표정은 늘 일그러져있고 무표정하다. 범죄자들을 바라보는 태도가 얼굴에 나타난다. 배두나에게도 곧 가족을 이루려는 남자 친구가 있다. 하지만 남자 친구와 그렇게 살가운 사이가 아니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가족상이 우리 대부분의 가족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이 있지만 알 수 없는 존재들이다. 어떤 이는 가족에게 전화가 오면 반가워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가족에게 전화가 온다는 건 어떤 일이 터졌다는 연락이다. 그래서 가족은 식구보다 더 못한 관계일지도 모른다.


수진(배두나)은 매일 상현과 동수의 현장을 잡기 위해 꼬질꼬질한 채로 빌어먹을 얼굴을 하고 있다. 정말 배우들은 영화 속에서 다 까발려야 하니까 이런 몰골로 수영과 동수와 상현을 내내 시선에서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꼬질꼬질 늙어 보이던 얼굴의 배두나가 마지막 우성이가 3살이 되었을 때, 마치 다시 아가씨로 돌아간 듯한 얼굴이 된다. 깨끗하고, 맑고, 밝아졌다. 소원했던 남자 친구와 가족을 이루고 꼬질꼬질했던 얼굴에 빛이 들어왔다. 그 모습도 아주 좋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13화에서 폰으로 듣고 있을 지안에게 동훈이 이런 말을 한다.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 마라, 당신 괜찮은 사람이다, 파이팅 해라. 그렇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숨이 쉬어져. 고맙다. 옆에 있어줘서.” “이런 말을 누구한테 해. 어떻게 볼 지 뻔히 아는데.” 동훈의 말을 도청해서 들은 지안은 눈물을 흘린다.


고맙다. 옆에 있어줘서.


가장 아플 때 위안이 되고 위로받고 싶은 사람도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포근하게 있고 싶은 게 또 우리들, 나약해마지 않는 인간이다. 수진(배두나)은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고, 소영 대신 그렇게 부모를 찾던 우성이를 수진이가 키우면서 가족에 대해서 눈을 뜨고 알아가는 모습이 짧은 장면으로 크게 화면을 뚫고 비친다.  



4.

그다음 포인트는  여관에서 수영이가 우성이를 안고 등을 두드릴 때 동수가 우성이를 이렇게 안으라며 조언하고 수영이가 안다고 하며 둘이 티격태격 같은 티키타카 할 때, 그때 수영(아이유)의 그 표정. 그 표정은 대단히 일상적이라 영화 속에서 쉽게 볼 수 없을 것 같은데 아이유가 그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편의점에 가면서 다녀오겠슴다~같은 그 말투.


너무나 지극히 일상적인 표정과 말투라 영화가 아니라 그 부분은 마치 다큐를 보는 것 같았다. 영화는 영화적 언어가 있다. 그래서 늘 경상도 사투리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적 작법으로는 영화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게 맞다. 영화 속에서 너무 일상적이면 오히려 이질감이 드러나기도 한다. 진짜 사투리를 쓰는 배우가 진짜 사투리를 쓰는 것보다 어쩌면 최민식의 그 부산 사투리가 영화 속에서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소영의 일상적인 말투와 표정은 가족에게서 멀어졌던 그녀의 표독함과 세상을 악으로 보는 그녀 마음속에 일상에 스며들고 싶어 하는 안타까움이 보였다.



5.

마지막으로 해진이의 어른스러운 어린이 짓이 깜찍하고 귀엽지만 마음속에 어른으로 이미 커 버린 모습이 딱하여서 안타까운 모습일 때다. 해진이는 영화 내내 웃음을 잃지 않는다. 아이가 내내 웃을 수만은 없다. 아이들은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에 울고, 떼쓰고, 소리 지르고, 막 달려야 한다. 그러나 해진이도 부모에게 버려졌다.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상현과 동수를 아빠와 삼촌으로 흡수하려고 한다. 아이이지만 어른이 된 것이다. 누구도 해진이에게 어른이 되라고 하지 않았지만 해진이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어른이 되었다.


어린 꼬꼬마 해진이가 누워서 “소영아, 소영이도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하던 해진이의 모습에서 해진이의 눈빛이 그때 잠깐 천사가 된 것 같았다. 해진이가 부르는 이름에 내 이름을 넣는다면 나는 정말 태어나서 고마운 존재일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생각하며 보면 참 재미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케이타와 류세이, 그리고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스즈처럼 우성이도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하며 지낼까, 열린 결말이 마음으로 생각하게 한다.

이 포스터가 마음에 든다. 마음이 아프고 병든 사람들이 만나서 가족을 이루어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우성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만나지 않았을 인연들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가족이 되었다. 이 세상의 모든 해진이와 우성이가 영차영차 열심히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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