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을 좋아하는데 단팥죽보다 그냥 팥죽이 좋다. 예전에 어머니의 여동생 딸과 함께 인사동에 놀러 한 번 갔었는데 단팥죽을 먹고 싶대서 단팥죽 집에 갔는데 글쎄, 사람들이 그 단팥죽 한 그릇을 먹자고 줄을 서 있는 것이다. 단팥죽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냥 가자고 했지만 사촌동생의 간절한 눈망울 때문에 50분 가까이 되는 시간을 서서 기다렸다. 그렇게 해서 먹은 단팥죽은 정말 단팥죽 맛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고 그저 달달한 단팥죽 맛이었다. 손님 대부분이 일본인들이라서 놀랐고 그들은 줄 서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오랜 기다림 끝에 단팥죽 한 그릇을 냠냠 먹고 나가는 것에 또 놀랐다. 단팥죽만 먹고 나오면 되는데 이것저것 파는데 이것저것 주섬주섬 주문해서 먹다 보면 돈이 쑥 빠져나간다. 고로 세 번 놀라게 된다.


단팥빵은 좋아하는데, 또 붕어빵 속의 단팥도 참 좋은데 단팥죽은 아주 별로다. 그래서 인간은 참 제멋대로 생겨먹었다. 단팥죽보다는 팥죽이지. 소화도 잘 되고(웃음). 나는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 일단 마음에 든다. 팥이라고 다 소화가 잘 되는 건 아니고 팥죽이 그렇다. 팥죽은 뜨거울 때 먹어도 좋지만 나는 팥죽이 식어빠진 것도 아주 잘 먹는다. 식은 팥죽이 오히려 나에게는 더 잘 맞는 것 같다. 새알이 둥둥 빠져있는 팥죽은 겨울의 음식이지만 식은 팥죽에 물김치나 동치미나 깍두기와 함께 먹는 게 맛있어서 여름에도 가끔 먹게 된다. 팥죽을 먹을 때 동치미를 곁들여 먹는 건 순전히 학습 때문이다. 동치미는 이름이 왜 동치미일까. 이런 건 또 궁금하잖아? 그래서 찾아보면 겨울 '동'에 김치를 뜻하는 한자어 '침'에서 유래가 되었다. 동치미에 국수를 말아먹으면 정말,,,,,


내가 사는 이 도시에는 오래된 전통시장이 있는데 거기에는 팥죽 골목이 있다. 시장이 생긴 이래로 지금까지 있으니 대략 60년 정도가 되었을까. 지금은 팥죽 골목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골목은 골목이지만 팥죽을 파는 집이 몇 집 밖에 없다. 주로 할머니들이 팥죽을 파는데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아마도 젊은 새댁 정도였을 것이다. 그녀들이 전통시장의 팥죽 골목에 자리를 잡고 팥죽을 팔기 시작해서 지금, 오늘까지 온 것이다. 그 사이에 없어진 팥죽집도 있고 팥죽 대신 튀김을 팔거나 김밥을 말아서 파는 사람도 생겼다.


골목의 양옆으로 팔 죽집들이 있는데 한쪽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식당 형식이지만 맞은편에는 그저 길바닥에 나무로 만든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서 먹는다. 다닥다닥 붙어서 먹는데 요즘은 그렇게 먹는 게 별로겠지만 예전에는 그런 멋과 맛이 있었다. 거기에 앉아서 팥죽을 먹으면 늘 물김치가 딸려 나왔다. 어릴 때는 맛도 없는 팥죽을 한 숟가락 먹고 인상을 쓰고 있으면 외할머니가 물김치를 떠서 입에 넣어주었다. 그게 그렇게 맛있을 리가 없지만 지나고 나니 그렇게 먹었던 기억 때문에 팥죽을 먹을 때에는 물김치와 함께 먹게 된다. 어릴 때 맛없던 팥죽이 어른이 되니 이렇게나 맛있게 먹는다. 인간이란 참 제멋대로다.


어린 시절에 초겨울이 되면 외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전통시장으로 갔다. 외할머니는 나의 내복을 구입하고 뿌듯한 얼굴로 나의 손을 잡고 팥죽 골목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집 근처에도 큰 전통시장이 있었지만 거기에는 팥죽을 파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좀 더 열심히 걸어서 팥죽 골목이 있는 전통시장까지 나를 데리고 왔다. 나는 그저 멀리까지 걸어서 간다는 생각에 신났다. 도착해서 추운 날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김이 폴폴 나는 팥죽이 나왔다. 외할머니는 꼭 나에게 먼저 한 입 먹이고 외할머니도 팥죽을 드셨다.


그때는 어려서 맛없었을 팥죽을 외할머니와 함께 먹고 내복 상자를 품에 안고 할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와서 따뜻한 아랫목에서 겨울을 맞이했다. 나는 꼬꼬마 어린 시절에 어떤 사정 때문에 집을 떠나 외할머니 손에서 몇 년 자랐다. 그래서 외할머니의 품이 나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자식도 많고 손주들도 많지만 멀리 떨어진 내가 사는 집에 자주 오셨다. 40년 동안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며 산 할머니는 남은 인생 하고픈대로 멋대로 살다가 갔으면 좋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이렇다 할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내 아버지와 내 외할머니는 지금 누구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글을 적으면서 기억을 한다. 그래서 글을 쓰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하찮은 팥죽 하나로 내 외할머니를 떠올릴 수 있다면 팥죽은 내게 큰 음식이다. 그래서 방탄이들이 그렇게 하찮은 것들에 대해서 노래를 불렀나 싶기도 하고. 이제 전통시장의 팥죽을 사 먹는 건 어려워졌다. 코로나 이후 그들은 오후 6시만 되면 쏜살같이 문을 닫고 집으로 간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팥죽의 가격도 많이 올랐다. 팥죽을 파는 할머니들의 입맛이 변했는지 어떤지 예전의 그 맛도 이제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죽 전문점에서 사 먹는 팥죽이 이제는 훨씬 맛있어졌다. 죽 전문점에서도 적은 양이지만 달달한 동치미도 준다. 형태가 있는 것이든, 형태가 없던, 시간이 지나면 변하게 되어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정말 제멋대로라는 것이다.



몇 집 안 남았지만 그래도 팥죽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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