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거리 곳곳에 있었다. 여름을 알리는 뜨거운 빛이 길거리의 그림자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고 뜨거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름이구나.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여름이 거리 곳곳, 사이사이에 뜨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누군가 찾아왔다. 누군가'들'이었다. 이 도시에는 젊은 작가들이 예술을 알리고 싶어서 활동하고 있다. 사진작가들도 있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 그리고 설치미술을 하는 작가들, 그리고 연극이나 예술 영화인들이 있다. 지방의 도시라서 이들의 활동은 아무래도 제약을 받거나 영역이 중앙 도시만큼 활발하지는 않다. 하지만 10년 전에 비하면 뭐랄까 비약적으로 나아졌다. 골목의 숨은 곳에 소극장이 들어서고, 소규모의 갤러리도 여러 곳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도 작년 딱 이맘때 한창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전시회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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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건물과 자동차만으로는 먹고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문화가 있어야 사람들은 감정을 드러내거나 숨기면서 인간관계의 중요성과 소통과 위로를 알게 된다. 나를 찾아온 사람들은 예술영화를 논하는 사람들로 나의 영화 리뷰를 보고 찾아왔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서 오는 것일까. 영화 리뷰라고 해봐야 아주 짤막한 글을 쓸 뿐이고 게다가 근래의 예술영화(라고 해야 할까, 예술 영화의 기준은 도대체 뭘까)에 대해서 쓴 글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와 이름 모를 감독의 이름 모를 제목의 영화, 그리고 예전의 이문열 소설의 원작인 ‘젊은 날의 초상’에 대해서 쓴 글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 나는 상업영화도 좋아해서 상업영화에 대한 리뷰도 쓴다. 그래 봐야 순전히 개인적인 글이지만. 상업영화가 나는 더 좋다.

 

예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답게 ‘베를린 천사의 시’나 내가 좋아해서 꽤나 보았던 고다르의 ‘알파빌’이나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부터 우리나라의 김기영 감독의 ‘하녀’까지 여러 예술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근래의 ‘드라이브 마이카’까지. 하루키는 내가 좋아하니까 소설과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어떤 영화를 제일 좋아하냐고 하기에, 아 그전에 그들이 찾아온 목적이 있을 것이다. 모임을 같이 하자는 목적이 제일 크고, 또 모임을 할 때마다 그 장면을 사진이나 글이나 영상으로 남겨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일 년 뒤에 전시를 하는 목적이었다.  


그들 중 나에게 어떤 영화를 제일 좋아하냐기에 한 영화를 말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스파이더맨이기에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좋아한다고 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에서 예전의 샘 레이미 감독의 초기작을 좋아한다. 그러자 그들 중 한 명이 그런 영화를 보는 건 시간이 좀 아깝다고 했다. 상업영화는 봐도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말했다. 예술 영화를 보는 게 인생의 시간을 잡아먹는 쓸모없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예술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간혹 예술 영화가 마치 최고라고,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영화학이 등장하고 영화 역사가 이루어진 현재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변화하고 감동을 주는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상업영화였다. 예술 영화가 마치 상업 영화 그 위에 있다는 생각은 뭐랄까 참 졸렬하다.  


그건 사진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진 학회의 사람들은 사진협회의 사람들을 자신들보다 조금 밑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사진협회는 사진업으로 먹고살아야 하니까 예술보다는 상업사진이 주가 되는데 사진 학회의 사람들은 사진업을 하진 않더라도 사진학을 공부하고 사진을 전공하거나 프랑스에서 사진에 대해서 유학을 하고 와서 그런지 프라이드가 굉장하다. 하지만 그들의 사진을 보면 그림자 찍어 놓고 자기네들끼리 대단하다고 칭찬하고 손뼉 치지만 일반인들이 봤을 때는 그저 그런 하나의 사진일 뿐이다. 그것보다 오히려 잘 나온 가족사진 한 장이 시간이 지나 추억을 하게 하고 그 당시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사진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의 의식을 고양시키고 감동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감정의 변화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위로를 하는 건 상업영화였다. 이번 박찬욱도 자신의 영화가 예술영화로 비칠까 봐 노심초사했다고 했다. 자신의 영화는 상업영화라고 말이다. 예술영화는 분명히 영화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할이 마치 상업영화의 위에서 행해진다는 생각은 아주 몹쓸 생각이다. 허진호 감독의 ‘행복’이라는 영화는 상업영화지만 보는 내내 주인공 은희에게 빠져들었다. 지켜봐 주는 이가 없어서 한없이 강해지는 한 여자의 이야기. 미래가 보이는 남자와 현재만 살아가는 여자. 옅은 병을 가진 남자를 사랑하며 위태한 여자. 현재가 중요한 여자와 내일이 중요한 남자의 사랑. 그런 은희에게 밀땅 같은 걸 할 여유가 없다. 절대 뛰어서는 안 되는 병을 지녔지만 새벽에 언덕을 달리는 은희에게는 몰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맞은편에 앉아서 밥을 먹던 황정민이 “너, 밥 천천히 먹는 거 지겹지도 않니?” 이 대사가 콕 박혔던 영화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면 나는 그 모임을 하지 않기로 했다. 등을 구부리고 구석진 곳에 앉아서 외로움과 싸워가며 글도 써야 하고, 매일 1시간 반 정도 조깅도 해야 한다. 요즘은 특히 마요네즈를 매일 먹고 있어서 조깅하면서 쉬지 않고 일정 거리는 달리려고 한다. 이 죽일 놈의 너무나 맛있는 마요. 어제는 두루치기에 휘휘 둘러서 먹었는데 소름 돋을 정도로 맛있어서 그만. 그리고 3일에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있다. 요즘 보는 영화, 그 안에 예술 영화는 그다지 없다.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것일까. 신기하다. 근래에는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 시즌4’와 ‘덱스터 시즌 2’를 보고 있다. 그리고 디즈니 플러스의 ‘오비완 캐노비’ 2편까지 봤다. 이 영화들? 이 드라마들의 리뷰를 신나게 적었다. 특히 오비완 캐노비의 이완 맥그리거의 연기, 꼬꼬마 레아 공주를 보는 재미가 있으며 스타워즈 이전 시리즈가 확 떠오른다. 스타워즈 팬이라면!


스타워즈의 깊이 있는 세계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릴 때 명절이면 늘 라이트 세이버를 휘두르는 제다이들과 한 솔로의 스타워즈를 친척들과 이불을 덮고 귤을 까먹으며 봤던 기억 때문인지 스타워즈를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 겨울방학이면 서울에 왕왕 갔었다. 그건 삼성동인가, 백남준 비디오 아트를 보기 위해서 여름과 겨울에 갔다. 사실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단지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그의 예술 세계가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플럭서스. 자기 파괴, 정신적 제설 작업, 자아의 또 다른 표현. 뭐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끌렸다.  그리고 전시회장에서 큐레이터에게 질문을 너무 해서 따로 불려 가기도 했다. 어느 한 큐레이터가 나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나도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잘 알지 못한다. 그의 예술을 이해하려고 하면 너무나 어렵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아름다울 수 있다." 그 이후에 나는 백남준의 세계가 더 좋아졌다. 아마 그 당시에 나는 몹시 외로웠고 어디에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도 반기지 않았다.


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고요하고 조용한 성격인가 봐.

하지만 조용한 성격이란 없다. 사람 앞에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이 말을 들어주지 않기에 보통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말 수가 적은 아이도 마음에 맞는 친구와 함께 있으면 말을 많이 한다.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란 없다. 상대방이 나의 말을 대체로 무시했기에 그 사람 앞에서는 조용한 것이다. 당시에는 이런 단순한 마음을 복잡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날 밤 사촌 누나 집에서 뛰쳐나와 연락도 하지 않고 어딘가 여관에서 혼자 잠을 잤다. 작은 창으로 난 밤하늘의 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새벽이 어스름 오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나와 무관하게 흘러간다는 것과 나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는 그대로 몸을 말고 잠이 들었다. 인터폰으로 체크아웃 시간이라고 해서 나는 나왔다. 사촌누나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가서 혼나고 그녀의 사무실에서 짜장면을 얻어먹고 고모 댁에 가서 인사를 하고 나와서 둘째 외삼촌 댁이 있는 시흥으로 갔다. 작은 슈퍼를 하던 외숙모가 나를 위해 저녁을 맛있게 차려주었다.  


나는 평소 친하지 않았던,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촌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 사촌들과 다 같이 한 방에 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자게 되었는데 그날 밤이 해가 바뀌는 12월 31일이었고 티브이에서 스타워즈가 했다. 모두가 두꺼운 한 이불에 발을 집어넣고 귤을 까먹으며 스타워즈에 빠져들었다. 스타워즈의 캐릭터와 몬스터들에 대해서 떠들며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몰랐는데 같이 보는 스타워즈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만달로리안을 볼 때는 느껴지지 않았던, 옛 추억의 스타워즈가 확 밀려오는 건 이번의 ‘오비완 캐노비’였다.


나도 제다이들보다 아임 유어 파더,라고 말하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줬던 다스 베이더를 좋아했다. 스카이 워커가 용암에서 팔다리가 다 잘린 그 후, 파메드가 죽고 난 그 후, 아기 루크와 아기 레아의 그 후, 제다이들이 몰살당한 그 후, 그 후의 이야기가 이번 오비완 캐노비에서 보여준다. 회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면서 존 윌리암스 느낌의 음악과 함께 ‘루카스 필름’ 글자가 나올 때 뭔가 짜릿하다. 스타워즈가 처음 나왔을 당시 루카스 필름에서 한창 그래픽을 배우던 이십 대 청년 워즈니악은 파견근무 형식으로 디즈니사로 가서 애니메이션의 움직임도 연구하고 있었다. 그때가 70년대에서 80년대였다. 그 당시의 그래픽이라고 해봐야 8비트, 16비트 이런 시기에 우주선을 날리고 라이트 세이버를 휘둘러야 하니 골 때렸다. 그런 그에게 와서 우리 같이 일해보지 않겠나, 나에게 좋은 3D 애니메이션 기획이 있네,라고 손을 내민 사람이 스티브 잡스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10년 뒤에 세계를 놀라게 한 토이스토리를 만들어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이번에 버즈의 이야기가 새롭게 영화가 됐는데 기대가 된다.


뭐 그건 그렇고, 오비완 캐노비는 보는 재미가 있는데, 꼬꼬마 레아 공주의 똑 부러지는 연기를 보는 재미가 크다. 무엇보다 이완 맥그리거의 연기가 굿이다. 유다인이라는 도시는 꼭 중국이나 일본 같은 느낌이고 의상도 기분 상으로 중국 느낌이 확 든다. 한국계 배우 성 한도 나오는데 분장을 떡칠해서 도통 알아볼 수 없다.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헤이든 크리스텐슨이 그대로 나온다 하니 역시 기대.


영화는 사람과 비슷하다. 사람 위에 사람이 없듯이 예술 영화가 상업 영화 그 위에 있지도 않고 상업 영화가 예술 영화보다 못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늘 겸손해야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예술이 영화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사진, 건축, 의상, 음악, 미술 이 모든 예술이 영화라는 예술보다 선배다. 그래서 영화는 선배 예술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그러니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https://youtu.be/_Lzx0dLZ1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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