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입 안으로 맛보는 오월이다. 오월도 벌써 반이나 지나갔다. 오월 이전까지 붉은 음식을 먹었다면 – 요컨대 찌개나 라면이나 탕 같은 국물음식이 추워서 찾게 되었다면 오월이 되면 계절의 눈높이에 맞는 음식을 찾게 된다. 물김치는 먹으면 푸른 푸른 녹음이 입안으로 후루룩 들어와 시원하다. 한 여름의 에어컨 바람 같은 시원함과는 다른, 낮에는 햇빛 때문에 조금 더워 겉 옷을 벗어야만 하지만 아침은 선선하고 밤이 되면 서늘해서 겉옷이 필요한 날의 시원함이다. 이제 곧 히사이시 조의 썸머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질 것만 같은 초여름의 전초전 같은 시원함이다. 호로록하고 물김치의 국물을 마시면 봄나물의 향이 입안에 확 퍼진다.
봄나물로 물김치를 해서 봄나물을 씹으면 약간 쌉싸름한 맛이 난다. 물김치의 시원한 맛과 그 쌉싸름한 맛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정말 이런 늦봄에 먹는 물김치의 상쾌한 맛은 우리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닐까.
이렇게 상큼한 물김치를 맛보는 계절이 오면 늘 어린 시절 손을 잡고 따라다녔던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먹기 싫은데 자꾸 숟가락으로 물김치를 떠 먹여 주었다. 나는 어린 시절 어떤 사정으로 집에서 떨어져 외할머니 손에서 몇 년을 살았다. 외가가 있는 곳은 온통 계곡과 산과 소똥뿐이었다. 그곳은 불영계곡이 있는 곳으로 외지에서 왔다고 동네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둘러싸여 맞아서 울고 있으면 외할머니가 원더우먼처럼 날아와서 아이들을 혼내 주었다.
외할머니는 밖에서 놀다가 땀을 흘리고 들어온 나에게 시원한 물김치에 국수를 삶아서 말아 주었다. 라면 끓여 달라고 막 그랬는데 할머니는 이게 훨씬 맛있다며 나에게 떠 먹여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매년 오월에 물김치를 먹게 되면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외할머니를 떠올리기 위해서라도 이 계절에는 물김치를 먹는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고 한 반찬일 요리사의 말처럼 물김치에 대한 나의 추억 속에는 외할머니가 오롯이 있다.
물김치와 더불어 이제부터 오이무침이나 오이물김치를 먹는다. 이렇게 먹으면 보통 여름이 끝날 때까지 오이를 대여섯 박스 정도를 먹는다. 여기서 말하는 박스는 라면박스가 아니라 보통 요만한 택배박스 정도의 박스다. 오이는 보통 그런 박스에 팔기 때문에 그런 박스로 대여섯 박스를 먹게 된다. 누군가 밖에서 무슨 음식 좋아해? 그거 사줄게,라고 해서 나는 오이를 좋아하니까 오이요리를 사줘,라고 하고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