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월드 안에서 가장 완벽한 영화가 이 영화 ‘그 후’가 아닌가 싶다. 이 비겁한 찌질함과 속물적인 찌질함과 회피성 찌질함과 한결같은 여자관과 그런 여자를 대하는 찌질함과 그런 찌질한 주인공을 몰아 부치는 부인 역시 찌질하다.
그 후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가 찌질하다. 주인공도 그 주인공을 사랑하는 불륜녀도, 그리고 그 불륜녀와 닮은 새로운 직원도, 그런 남편을 의심하는 부인도 찌질하게 그려냄으로 인간은 모두가 공평하고 동등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인간이 원래 다 그래, 인간이 더 배우고 덜 배우고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본성의 차이는 없단 말이지.라고 대 놓고 영화는 영화적 언어로 잘 도 말한다.
내가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를 읽어보지 못해서 어떻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영화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과 비교를 하던데 정말 그럴만한가. 소설 속 다이스케가 사랑을 통해 자아를 깨달고 난 그 후의 이야기라면 영화 ‘그 후’에서는 그전과 그 후의 찌질한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가.
권해효는 바람을 피는 지식인의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김민희와 술을 마실 때 술이 취해서 테이블 위에 손목시계를 풀어 놓은 것을 보면서 이런 디테일을 살리다니, 찌질한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찌질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 때 꼭 손목시계를 풀어서 놓곤 하는데, 풀어 놓은 손목시계 만으로도 그걸 해냈다.
그러면서 출판사에 찾아와서 생난리를 부리는 부인까지 같이 찌질하게 묶어가면서, 부인이 주인공에게 그런다. 그래 너 바람핀 그년이 (김민희를 가리키며) 이 여자보다 예뻐?라고 한다. 이 찌질함이 오고가는 대사 속에서도 김민희는 반짝이게 표현한다. 홍상수는 정말 자신의 내면 밑바닥까지 내장 꺼내듯 꺼내서 영화로 만들어 버리는 세계 유일한 감독이다.
자신을 걸나 비판하고 욕하면서도 그 안에서 상대방도 자신과 같은 찌질함으로 엮어 가고 동시에 연인에 대한 찬사는 아끼지 않는다. 아이그 씨바 라고 욕을 하면서도 보는 건 재미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