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부터는 감독이 두 명으로 1,2,3화를 연출했던 감독에서 바뀌었다. 그래서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조금 느낌이 다른데? 하는 생각이 든다. 선자의 가난하고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조촐하고 우울한 결혼식에서 선자의 어머니는 담담하다.

선자의 손을 꼭 잡아 줄 뿐이다. 그러나 선자가 떠나가는 선착장에서 오열을 한다. 어머니이기 전에 여자였던 것이다. 4화부터는 이렇게 연출이 되어 간다. 하지만 시리즈 말미에 가면 다시 초반의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4화에서는 내가 믿고 있는, 믿어야만 하는, 그래서 나의 온 미래가 걸려 있는 거대한 압박에서 벗어났을 때의 해방감에서 오는 큰 기쁨과 찌꺼기처럼 깔려있던 미미한 그리움이 일렁이다 폭발하게 되는 건 나도 모르게 내가 그동안 맡았던 내 삶의 냄새, 내 삶의 촉감, 내 삶의 소리와 바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나의 감장이 터져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나의 노래가 이토록 마음의 연약한 부분을 건드리고 건드려 억압에 대해 강하게 분노를 드러냈다. 하얀 드레스에 번지는 붉은 피가 안타깝고 슬프게 보이는 건 비록 영화 속의 모습뿐만 아니라 현실의 우크라이나의 모습도 보이기 때문이다. 파친코는 여러모로 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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