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지금 우리 학교는’이 절찬리 상영 중이다. 나는 7회 정도까지 봤다. 학교가 아주 엉망진창인데 이 엉망진창이 학교 밖으로 퍼져 나가고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몰고 온다. 그 와중에 이유미가 연기한 이나연은 최고의 빌런이다. 악역을 마치 그렇게 태어난 사람처럼 해버린다면 그건 연기를 잘하는 거겠지. 오징어 게임에서도 히트를 날렸지만 어쩐지 이 영화는 박화영 1, 2에서 세진이의 모습이 좀 이어지는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이겠지.


곽부성과 기무라 타쿠야와 강남을 절묘하게 섞어 놓은 듯한 잘생긴 청년은 누구인가. 이런 시원시원한 마스크는 꽤나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장동건 이후에는 영화판에서는 이렇게 조각 같은 외모는 피하려는 것 같은데, 이 시리즈가 전 세계 동시 방영이라 음, 그렇군, 하며 납득이 된다. 유치원 어린이 좀비들에게 좇기는 유튜버의 모습은 단비 같은 웃음을 준다. 수능에 대한 경멸적인 모습을 보이는 욕 잘하는 거친 미진도 극의 재미를 준다. 이렇게 욕을 듣기 좋게 기가 막히게 연기하면 최애 캐릭터가 된다. 특히 조삼모사(본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안다). 대수 역시 지옥 같은 학교 안에서 아이들과의 대화와 행동으로 보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노래도 잘 부른다. 가수가 꿈인 대수가 직접 만들어 옥상에서 다 같이 부르는 노래 가사는 고등학생들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


7화까지 보면서 관통하는 대사들이 몇 개 있었다.

“희망은 삶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고문이다.”

“그 절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

“너, 너 먹고 싶어.”

“과학은 상상에서 시작해 미스터리로 끝난다. 퇴근길에 무당을 찾아갔다. 이거 하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우리를 구할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


몇 화 남지 않은 나머지가 긍금하다. 생각해보면 어쩌다가 좀비가 전 세계의 영화를 점령해버렸다. 왜,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좀비 이전에는 뱀파이어가 있었는데, 섹시하고 하늘도 날아다니고 이빨도 뾰족해서 좀비보다는 덜 아프게 목덜미를 물어 피만 쪽쪽 뽑아 먹었는데, 그랬는데 어느 날 좀비가 한 두 마리 늘더니 순식간에 뱀파이어를 영화 속에서 몰아내 버렸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내일이 오는 게 싫어졌다. 휴대폰의 전화번호는 늘어나는데 막상 전화를 할 사람은 줄어들고, 학교 다닐 때 들었던 불안은 졸업하면 사라질 줄 알았는데 더 큰 불안이 뒤 따른다. 그래서 매일 이어지는 오늘이 잔인해졌다. 어제의 나는 어떻든 살아있고 하루를 정리할 필요도 없고 불안과도 이별을 하고 있다. 하지만 눈뜨면 잔인한 오늘이 시작되고 불안은 눈두덩처럼 불어나기만 했다. 사람들은 잔인하고 불안한 오늘보다 행복한 과거에서 살고 싶었다. 인간의 삶에 싫증난 사람들이 뱀파이어가 되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뱀파이어는 인간처럼 사고하며 아름답기까지 하며 무엇보다 영생한다. 공포의 최고에 있는 뱀파이어가 오면 도망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은 인간의 삶에 지쳐 뱀파이어가 되길 바랐다.


그 괴리 사이를 뚫고 좀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좀비가 되면 모두가 똑같다. 뱀파이어처럼 사고하며 이리저리 재지 않는다. 부모고 자식이고 사랑하는 사람이고 뭐고 간에 전부 그저 하나의 먹이일 뿐이다. 뱀파이어는 하급, 상급 계급으로 나뉘지만 좀비는 그야말로 평등, 평등하다. 뱀파이어처럼 옷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씻지도 않고 잠도 안 자고 지치지도 않는다. 오로지 하나의 신념으로만 움직인다. 맥스 브룩스의 ‘세계 대전 Z’를 읽어 보면 전 세계에 좀비가 일어나고 20년이 지난 후의 각 국의 정치적, 경제적으로 대처한 방법에 대해서 서술해 놓았는데 거기에 좀비에 대해서 아주 현실적으로 접근해있다. 하나의 군인을 만들고 유지하려면 비용이 들지만 군인을 좀비로 대처하면 군복, 잠을 자야 하는 막사, 식사 같은 것이 전혀 필요가 없다. 비용이 절감된다. 좀비는 구덩이에 쥐가 들어가면 거기에 머리를 박고 3일 동안이나 쥐를 찾으려고 으르렁 거린다. 좀비는 그런 것이다. 오로지 하나의 신념! 그 하나로 움직일 뿐이다. 이 세계 대전 Z 속 전 세계에 좀비가 일어난 일을 영화로 만든 것이 ‘월드 워 Z’였다. 영화 속에서도 각국이 좀비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잘 나온다. 좀비라는 매개를 통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좀비라는 카테고리를 빼고 그 안에 재해를 넣으면 더 와닿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오늘 이 시기에 코로나 대신 좀비를 넣어도 각 나라에서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하며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다.


공포영화의 아이템으로 좀비는 최고인 것이다. 지금 우리 학교를 5편 정도까지 봤을 때는 정유정의 ‘28’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정유정의 소설을 통틀어 나는 ‘28’이 가장 좋았다. 개와 사람이 같이 걸려 버린 인수 공통 감염병으로 28일 동안 폐쇄된 도시 화양에서 일어나는 대재앙 같은 일. 정말 재미있었다. 개들과 인간의 사랑이 개들과 인간의 같은 감염병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절묘한 문체로 끌어당겼다. 지. 우. 학처럼 도시를 폐쇄하고 군이 투입되고. 하지만 6화가 지나고 7화가 지날수록 모든 효산시의 모든 사람들을 무증상 감염자로 지정을 해버린다.


재난 영화에서 영화의 태도는 늘 시스템과 절차를 문제 삼는다.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책상에 앉아서 방법을 제시하고 시스템을 만드니 현실을 살아가는 일반국민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현재 코로나 시기에 방역 대책을 매번 내놓는 정부와도 비슷하다. 전혀 다르지 않다. 지. 우. 학은 기가 막히게 정부를 꼬집고 있다. 대재앙이 불어닥치면 언제나 노인과 서민들이 맨 앞에서 그 감당을 해야 한다. 죽어나가도, 폐업을 해도, 부작용이 심해도, 후유증을 앓아도 그저 하나의 숫자로 기록될 뿐이다. 국가는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시스템은 늘 그렇게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것이 현재 시대의 숙제가 되었다. 지. 우. 학을 잘 벌려서 보면 그런 모습을 볼 있다. 그러고 보면 정유정의 28을 읽은 지가 아주 오래되었는데 아직 영화가 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전 세계의 좀비 영화가 가지는 실수, 오점은 현대 시대의 좀비는 탱크나 총기나 화기에 이길 수가 없다. 그 이빨로 들이대도 철판을 물어뜯을 수가 없다. 실제로 현실에 좀비가 나타난다 해도 총이나 대포에 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좀비물을 만드는 감독은 그 부분에 있어서 늘 고민을 하고 있다.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좋은 좀비 영화가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한 좀비 영화들이 대부분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득력이 있는 게 ‘킹덤’ 시리즈다. 옛날에는 칼과 창으로 좀비를 막아내야 하니 설득이 된다. 그리고 이 시리즈다. 지. 우. 학의 시작은 학교다. 학교 역시 총과 칼보다는 책상과 대걸레 같은 것뿐이라 좀비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 거기서 주인공들은 고립된다. 그리고 그 고립에서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고 충격을 받은 주인공들은 자신들을 구할 사람은 오직 자신들밖에 없다는 걸 안다.


잘 만든 좀비물은 좀비 그 자체에 중점을 두지 않고 좀비, 그 밖의 배경에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현실과 아주 밀접하다. 오직 하나의 신념으로만 움직이는 것들- 자연재해, 바이러스, 세균 같은 것들은 인간사회에서 떨어질 수 없는 것들이다. 지. 우. 학은 구멍이 보이고 단점도 보이지만 일단 좀비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재미있다. 악질스러운 빌런과 나오고, 물렸으되 좀비가 되지 않은 빌런도 나오고, 학교까지 노트북을 찾아가려는 옹고집 형사도 나오고, 고구마 캐릭터도 있고, 어디서 봤던 장면도 있고, 웃음이 나오는 장면도 있다.


과학교사로 나온 김병철이 좀비가 되었을 때, 그 모습은 영화 28주 후의 돈 역으로 나온 로버트 칼라일이 좀비가 되었을 때의 모습과 흡사하다. 로버트 칼라일은 아무리 봐도 톰 요크와 닮았고. 영국인들은 꼭 그렇게 생긴 것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좀비 물이라 진짜 주인공들은 좀비들이다. 좀비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낸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까지가 1월 31일에 쓴 글인데, 지금은 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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