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지금도 그렇지만) 1년 전에 느닷없이 그 녀석이 귀여운 딸을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켰다. 딸은 어려서 아빠의 다리에 붙어서 수줍어했다. 마스크를 해서 귀엽고 안타까워 보였다. 어린이들이 마스크를 한 모습은 왜 그런지 늘 안타깝다. 그 녀석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을 한 번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와는 썩 친분이 있지는 않았다. 그 녀석은 주로 뒤에서 노는 편이었고 밴드를 하고 있어서 몸에 ‘반항’이 뿜어져 나오는 게 눈으로 보이는 그런 녀석이었다. 교복도 교복 같지 않게 입고 다녔다. 녀석은 대학교 밴드에 껴서 기타를 연주했을 정도로 기타를 잘 쳤다. 정말 누노 배텐코트 같았다. 머리를 길게 기르지 못해서 그렇지 얼굴도 잘생겼고(왜 밴드 하는 녀석들은 죄다 잘 생겼을까) 다리도 길었다. 밴드는 매틀밴드로 밴드 이름이 물레방아인가 그랬다. 스키드로우의 아이 리멤버 유의 12줄짜리 기타 연주도 곧잘 해서 날이 좋으면 학교 등나무 아래 벤치에서 연주를 하곤 했다. 멋있었다. 그때는(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속주 기법으로 기타 연주를 하는 게 인기였다. 녀석은 당시에 고등학생 주제에 잉위 맘스틴의 곡을 연주하곤 했다. 대학교 축제에도 섰고, 각 고등학교 축제에도 불려 가서 연주를 했다. 아무튼 멋진 놈이었다. 강력한 록만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녀석은 비틀스의 음악을 몹시 좋아했다. 한 번 같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잉위 맘스틴, 잉베이 맘스테인, 잉위 맘스테인으로 불렸던 잉위 맘스틴의 앨범을 나는 가지고 있다
[넌 어때? 난 말이야, 비틀스의 화이트 앨범을 좋아해.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는 조지가 만들었어. 난 조지 해리슨이 가장 좋아. 넌 어때? 이렇게 좋은 노래를 만들었잖아. 조지 해리슨의 얼굴도 네 명 중에 가장 멋지게 생겼다고 생각해. 물론 나만의 생각이지만. 폴 매카트니는 어딘지 구울 같은 얼굴 모습이야. 존 레넌은 점점 인간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 같고 말이지. 링고 스타는 전형적인 미국 만화 3편쯤에 나와서 죽는 얼굴처럼 생겼어. 그런데 조지 해리슨은 퍼펙. 많은 조명이 두 사람에게만 집중되었지만 난 달라. 조지 해리슨은 패티 보이드를 가지잖아, 세상에. 봤지? 패티 보이드, 사람의 모습이 아니야. 조지가 패티 보이드에게 사인을 해주면서, 무려 7개의 하트를 그려줬잖아.
와일 마이 기타, 저 노래를 녹음할 때 에릭 클랩튼이 놀러 온 거야. 두 사람은 정말 친한 친구잖아. 이봐, 에릭, 기타 세션을 맡아줘. 조지가 에릭에게 말했어. 어? 내 기타가 없어서 잘 될까? 망치지 않을까? 해준다는 말이지? 자 그럼 내 기타로 연주를 해줘. 에릭 클랩튼은 즉흥적으로 기타 연주를 해 주잖아. 조지는 에릭에게 기타도 빌려주고 패티 보이드도 빌려주고. 박애주의자 같은 녀석.
하지만 조지도 존에 비하면은. 존 레넌은 정말 돌아이였어. 이 녀석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생겨 먹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난 멤버들을 데리고 비틀스가 되려고 하지 않아, 그건 노력 여하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고. 존 레넌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존 레넌이 오노 요코를 사귀고 있을 때였어. 아직 메시아의 형상으로 돌입하기 전이었지. 아직 악동이었고 음악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어린이 같았을 때 말이야. 그 당시 일본에는 평범 펀치라는 잡지사가 있었어. 우리나라로 치면 선데이서울 같은 거지. 70년 전후에 생겨나서 거품경제가 파괴된 후 사라진 일본의 많은 잡지사 중에 하나였어. 요코 덕인지 평범 펀치라는 잡지는 존 레넌을 인터뷰하게 돼. 잡지사는 완전 대박을 친 거지. 존 레넌은 인터뷰에서 아주 화가 난 상태로 열변을 토했는데, 우리(비틀스) 네 명은 지금까지 대체로 어떤 여자든 모두가 돌리며 공유해 왔다. 그런데 이 녀석들 세 명은 요코에게만은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그건 심한 굴욕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지금 몹시 화가 나 있다. 친절한 박애주의를 몸소 실천하는 녀석들. 서로 평등하게 사랑을 해야 한다나 뭐라나.]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별을 보고 별의 그 모습에 홀딱 빠져서 보게 되는 그런 시기였다. 괴짜였다. 학교에 전기기타를 들고 오지 않나. 체육시간에 엠프를 켜서 징 연주를 하다가 체육샘에게 끌려가서 신나게 맞았지. 그래도 웃었다 그 녀석. 그랬던 녀석이었는데 교통사고를 당하고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났다. 그 이후로 기억을 잘하지 못한다. 너 그때 우리 이런 이야기를 했잖아?라고 하면 미소를 지으며 교통사고를 당하고 난 뒤에 기억이 안 되는 게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 기타 연주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석유화학단지에 입사해 다니면서 선을 봐서 만난 여성과 결혼을 하여 귀여운 딸을 낳았다. 말을 빠르게 하지 못하며 살이 많이 쪘다. 약간 옆으로 넘어질 듯 걷는다. 어제도 지나가다가 들려서 아아를 사주고 갔다. 글쎄, 뭐가 잘못된 걸까. 아니면 잘되고 있는 걸까.
어제 '노웨어 스페셜'을 봤다. 3살인지, 4살인지 마이클의 연기 같지 않은 연기에 온 마음을 홀딱 빼앗겨 버렸다. 아빠와 손잡고 걸을 때 그 삐죽거림과 시리얼을 가지고 장난치는 모습이나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담아 아빠를 쳐다보는 눈빛에서 이 어린 마이클의 모습에 영혼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영화는 곧 죽음을 앞둔 34살의 시한부 아빠 존이 엄마 없는 마이클의 부모를 찾아 주려는 이야기다. 영화가 되게 슬플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보는 이들의 감정을 억지로 쥐어짜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그저 덤덤하게 흘러간다. 이래도 돼? 할 정도로 덤덤하게 흘러간다.
존은 마이클을 데리고 복지사와 함께 자신 대신 맡아줄 부모의 집을 다닌다. 하지만 존의 마음에 드는 대리 부모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마이클과 다니다가 마이클은 한 아주머니의 집에서 이런 질문을 한다. 아줌마는 언제 죽어요?
영국 영화인데 영화 내내 비가 오거나 흐리거나 또 비가 오는 날 뿐이다. 영화는 감정을 모으는 신파를 보여주지 않는 대신 감정을 분산시키는 배경이나 과정으로 존의 마음과 마이클의 심정을 표현한다. 아무튼 너무 좋다. 이런 영화의 태도도 좋고, 영화가 그냥 좋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피아노 곡이 조용하게 흐르면서 존이 마이클 데리고 그 아주머니의 집을 두드리고 아주머니가 나오는데. 그때 초췌한 존의 얼굴이 보이고 마이클이 손을 잡은 아빠의 얼굴을 올려다볼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눈물은 전조도 없이 어떤 감정의 이입이나 돌발도 없이 그저 눈물이 죽 나와버렸다. 잘 되고 있지는 않지만 나쁘지 않은 거겠지? 꼭 행복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덜 불행했으면 하는 거지 https://youtu.be/qRgEvytO48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