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보는 바다의 모습이지만 매일 보기 때문에 매일 달라지는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다의 장점이라면 멍 때리기 좋다. 바다 멍만큼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을 수 있는 곳도 없다. 빛이 바다에 떨어져 반짝반짝 은갈치 같은 실루엣은 그저 멍 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매일 보면 바다는 어제와 다르고 한 시간 전과도 다르다.


그저 어쩌다가 보는 바다에서는 그 달라짐을 눈치 채지 못한다, 바다는 표정을 가린 채 너는 내가 어제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를 걸, 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어쩐지 사람과 닮았다. 사람은 시간을 들여 조금씩 늙어가지만 눈치 채지 못하다가 십 년 후에 늙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늙어가야 아이들은 쑥쑥 커가니 나는 왜 이렇게 늙었지 같은 생각은 소용이 없다.


여기는 광역시이기는 하지만 지방이라 당연하지만 사투리가 난무한데 프랜차이즈 카페의 직원들이나 로컬 카페의 주인이나 아르바이트생들은 전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신기할 정도로 사투리를 들을 수 없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나 정도밖에 없는 착각이 들 정도다. 착각이 들 만큼 표준어를 쓰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아진 건 확실하다. “왜 이카는 데, 저거 두가”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은 바닷가의 장기방에서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 정도뿐이다.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는 모습을 구경하면 재미있다.


훈수를 잘못 둬서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심각해지기도 하고, 한 수를 옮기는데 너무 오래 걸려 또 전쟁이 나기도 한다. 보통 그렇게 전쟁이 나다가도 장기기 끝이 나면 사랑으로 바뀌는데 막걸리는 마신 경우는 장기가 끝나고 백사장으로 가서 전쟁의 2막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때에는 기분 좋은 사투리를 들을 수 있다. 시원시원하게 내뱉는 사투리의 욕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다 코로나 전의 이야기다.



어떤 날의 바다는 겨울의 차가운 사념을 가득 지니고 있다. 한파가 몰아치고 지나가면 영상의 기온이 바닷가에 퍼지면 동네의 노인들이 나와서 볕을 쬐며 앉아있다. 미동도 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는 노인들의 등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꼭 바다의 사념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또 어떤 날의 바다는 궤변을 잔뜩 늘어놓은, 터무니없는 모호한 칼럼을 읽는 것 같다. 여기를 읽고 있는데 이미 읽었던 문장 같다. 또 어느 날은 길을 잃어 헤매는 바다코끼리의 울음 같기도 하다. 어떤 결락을 바다는 잔뜩 지니고 있다.


그러다 활자로 지정할 수 없는 날이면 바다는 부쩍 신이 나서 파랗게 질려 황홀의 밤과 낮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어떻든 바다를 정직하게 설명하려고 하면 부정확한 대기가 해무처럼 확 다가와서 나를 감싼다. 이어폰에서 음악이 바뀌어 에드 시런의 노래가 나온다. 에드 시런은 참 에드 시런 답게 생겼는데 에드 시런 답게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이렇게 좋다니. 노래가 끝나면 한기가 파도처럼 밀려올 것이다. 조깅을 끝내고 따뜻한 국을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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