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 하면 말이에요.라고 그녀는 내 눈을 보면서 말한다. 추운 겨울 아침에, 싫구나, 일어나고 싶지 않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커피 향기와, 햄에그를 굽는 지글거리는 냄새와 토스터 작동이 멈추며 내는 탁 소리에 그만 참을 수가 없어서, 과감하게 침대를 박차고 나오는 일이에요.

하루키의 소설 ‘댄스 댄스 댄스’를 보면 이렇게 초반에 시작을 한다. 맛있는 냄새에 더 자길 포기하고 이불을 박차고 나오는, 그 전경이 눈앞에 홀로그램이 되어 나타나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아침에, 겨울의 아침에 눈뜨자마자 몸을 일으켜 바로 맛있는 떡국을 먹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봉 감독의 영화 ‘괴물’ 마지막 장면이 그렇다. 현서를 잃은 대신 세주를 얻은 강두는 하얗게 눈 덮인 한강변의 아침에 밥상을 차리고 세주를 깨운다. 세주는 쿨쿨 자다가 그대로 일어나서 맛있게 밥을 먹는다. 세주가 하수구 같은 곳을 돌며 그토록 원하던 것이었다. 이 장면은 세대를 관통해서 보는 이들에게 마지막까지 각인시킨다.


겨울의 일요일, 잠은 더 자고 싶은데, 일어나기는 싫은데 맛있는 떡국의 냄새가 잠의 세계로 파고든다. 엄마가 밥 먹어라고 말하며 아빠가 나의 등을 슬슬 문지르며 몸을 일으킨다. 바로 일어나서 뜨거운 떡국을 퍼 먹었던 기억. 단칸방이어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기억은 겨울이 되면 주기적으로 오는 손님처럼 똑똑 노크를 하며 찾아온다. 마치 세주가 되어서 눈 뜨자마자 눈곱도 떼지 않고 따뜻한 방 안에 앉아서 밥을 먹었던 기억.


아마 봉 감독도 그런 기억이 있어서 그 장면을 넣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디자인을 좋아하는데, 걸어 다니며 간판 디자인을 보는 것 때문에 일행에게 핀잔을 들은 경우도 있고, 책 표지 디자인도 꽤나 유심히 보는 편이다. 올리는 소설의 표지도 마우스로 다 디자인을 한 것이다. 책 표지 하면 칩 키드의 디자인을 좋아한다. 칩 키드는 너무나 유명하기에 간결하면서 눈을 확 사로잡는 디자인을 해 버린다. 미래의 세상은 디자인의 세계가 되지 않을까.

사진: 펜톤미술학원 본원 공식 블로그 발췌


간판이나 과자의 글씨체도 전부 디자인인데 특히 좋아하는 글씨체가 ‘코카 콜라’다. 병에 딱 한글로 ‘코, 카, 콜, 라’라고 박힌 그 까만 글씨체의 디자인이 아주 좋다. 요즘에야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지만 우리에겐 친숙한 코카콜라 이 글씨체 디자인은 68년에 등록이 되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계속 이 디자인의 코카콜라로 쓰이고 있다.

이 글씨체 디자인을 만든 디자이너가 2017년에 작고하신 봉상균 화가다. 바로 봉 감독의 아버지다.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 봉상균. 검색을 하면 그의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봉 감독의 외할아버지도 시대의 이름을 남긴 소설가였다. 그는 김해경(이상), 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 활동을 했고 그의 가장 유명한 소설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었다.


봉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은 외롭고 힘든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아카데미에서도 쾌거를 이뤄낼 수 있었다. 봉 감독은 아마도 아버지 봉상균 화가의 작품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꿈을 가지게 되었나 보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맛있게 겨울의 아침을 후루룩 같이 먹었던 추억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추억은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내내 기억의 저편에 붙어서 겨울이 오면 손님처럼 찾아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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