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wsMro6_1BqA

엽천문-천취일생. 유튜브 진이삼춘 채널



첩혈쌍웅은 제니와 아쏭의 안타까운 누아르 영화였다. 누구나 다 킬러와 형사의, 남자들의 이야기라고 소개를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사랑 이야기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실명을 한 여자 가수를 지켜주는 한 킬러의 이야기.

제니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버려버린 아쏭의 아픈 이야기.

비싼 가격에 사람을 죽여 실명한 제니의 눈을 수술해 주고픈 한 남자, 아쏭의 이야기.

그리고 그를 쫓는 한 형사의 또 다른 이야기.


아쏭은 제니를 떠올리며 하모니카를 분다.

하모니카는 바이올린만큼 슬픈 영혼의 소리를 실처럼 뽑아낸다.

제니는 눈이 멀어도 계속 노래를 부른다.

자신의 노래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들릴 수 있도록.

서글프고 구슬픈 노래지만 제니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통해 나오는 노래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픔을 말한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제니.

자신의 눈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위한 노래를.


이 이야기는 슬프고 슬픈 사랑 이야기다.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제니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아쏭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는 것뿐.

두 사람은 너무나 가까이 있는데 찾지 못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큰 눈에

만화에서 갓 나온 듯한 표정을 짓는,

곁에 있어 줘야만 할 것 같은 제니.


박정대 시인의 '삶이라는 직업'이라는 시집에서,

예뻐서 늘 쳐다보는 달력 속의 여자가 제니 같은 여자가 아닐까.

제니는 사랑해선 안 되는 남자를 사랑하기에 오늘도 노래를 부른다.





유체 이탈자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고 절실했으면 강이안은 자신의 잠든 육체를 벗어나 다른 이의 몸으로 들어가 사랑하는 진아를 구하려고 했을까. 그 사랑의 깊이가 바닷속만큼 깊어서 강이안은 사랑하는 이가 죽음으로 가는 걸 막아야 했다.


유체를 이탈해가면서까지 진아를 지키고 싶었던 이안을 보면 예전의 고스트가 된 샘이 떠오른다. 그렇게나 사랑하는 몰리를 두고 죽어버린 샘은 몰리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몰리는 크게 두 번 눈물을 흘린다. 동전이 공중 부유하여 손에 쥐어질 때 샘의 존재를 확인하고 눈물을 흘리고 마지막 샘과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린다.

말도 안 되는 사랑 이야기.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이야기. 이상하고 또 이상하고 그저 이상한 이야기. 하지만 사랑이란 그렇다. 답답하고 미칠 것 같다가 평온하고 빡치고 애타고 죽을 것처럼 보고 싶고, 설명할 수 없이 황당한 게 사랑이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고 뚜렷한 답도 없어서 갑갑하다. 비난을 각오하고서라도, 사회에서 매장이 될지언정 사랑은 그 모든 것을 모래성처럼 무너트려 버린다. 당황스럽고 이상하고 미쳤고 말도 안 되는 것이 불같은 사랑이다. 사랑 그 하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다.


몰리는 사랑하는 샘에게서 정말 사랑받았다는 그 느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샘이 없는 이 험한 세상에서 아마도 다른 이들에 비해 잘 헤쳐가리라. 그런 몰리를 지켜주지 못해서 샘은 죽은 뒤에도 끊임없이 노력을 한다. 사랑은 노력이 필요하다. 두 사람이 마지막 헤어질 때 몰리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리고 마지막 대사가 영화를 말해준다.

사랑해 몰리, 언제나 사랑했어.

동감이야,라고 몰리는 대답 한다.


유체 이탈자의 이안과 진아도 그런 과정을 지나 더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려는데 그만 죽음 직전으로 내몰리고 만다. 몰리가 샘에게 사랑받았다는 그 느낌을 이안과 진아에게서도 봤다. 영화는 분명 액션인데 내 눈에는 너무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보였다.


윤재근 감독이 스토리보드와 스트립터로 참여한 영화 ‘선물’을 나는 좋아한다. 얼마 전에도 봤다. 죽어가는 아내를 두고도 공연에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줘야 하는 삼류 개그면의 처절한 이야기. 너무나 예쁜 이영애와 너무나 일반인처럼 나오는 이정재의 너무나 아픈 사랑 이야기. 나는 그래서 유체 이탈자가 액션 영화가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랑이 깊어 절대 지키고픈 한 남자의 이야기로 보였다.


그래서 오늘은 선곡은 장국영의 최애. 최고의 사랑이다.


https://youtu.be/W9jq62-MIUE



학창 시절 사진부 암실에서 선배들에게 허벅지를 난도질당하고 아픈 다리를 주무르고 있을 때 한 선배가 장국영을 들어보라며 주고 갔다. 겨우 일어나 암실 창가에 앉았다. 햇살이 창을 투과해 다리에 녹아 내려앉았다. 욱신거리는 다리 위에서 햇살에 비친 먼지들이 춤을 추었다. 앨범을 그 위에 올리고 ‘최애’를 들었다.


노래를 듣고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가 있을까 생각했다. 넋을 놓고 듣고 또 들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하얀 눈이 떠올랐고 그 속에서 빛처럼 부서지는 내 몸도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정말 너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초라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동안 나를 스쳐갔던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들. 지나간 것들을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건 그 순간을 눈물을 흘리며 몇 백번이나 떠올렸을까.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도 나에게는 최고의 순간이었을 그 어느 때. 그때를 기억하는 건 나에겐 찬란하고 빛나는 자산이다.


그때 맞이했던 포근한 온도와 나른한 햇살과 아카시아 꽃과 같은 향을 앞으로 만나지 못할지라도 나의 추억 속에서는 그 장소, 그 공간 그 시간이 그대로 우뚝 서서 나를 타이른다. 그리고 그곳에는 장국영이 열심히 무대 위에서 땀을 흘리며 ‘최애’를 부르고 있다. 넌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고 하면서, 너 자체가 사랑이라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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