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이 부예지는 수증기가 손으로 만져질 것 같아서 팔을 휘휘 저어 보기도.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은 문 하나로 인해 단절되고 문 그 안쪽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었다. 그 세계는 따뜻하고, 뜨겁고, 비현실적인 소리와 공기가 눈을 홉뜬 세계였다. 모두가 신생아처럼 돌아다니고 신처럼 물을 몸에 뿌렸다.


어린 시절의 목욕탕은 그런 이미지였다.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인간이 아닌 인간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목욕탕, 대중목욕탕이었다. 목욕탕에 안 간 지 9, 10년은 되었으니 대중목욕탕의 기억은 대체로 어린 시절로 거슬로 올라간다. 목욕탕에는 아이 혼자서 가지는 않는다. 법으로 정해 놓았는지 모르겠지만 법으로 못을 박은 것처럼 아이 혼자서는 대중목욕탕에 가지는 않는다. 혼자서는 재미도 없고.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뜨겁고 차가운, 기이한 기분이 드는 곳이 아이에게는 위험천만한 곳이라니. 목욕탕 안에서는 절대 뛰어다니면 안 된다. 그러다가는 혼난다. 얼른 어른이 되어야지. 그래야 목욕탕에 오고 싶을 때 혼자 씩씩하게 와서 저기 저 한증막에 들어가 봐야지. 아버지와 함께 토요일 저녁에 오는 목욕탕은 나의 놀이터였다. 넓은 탕 안을 마치 늪지대를 유영하는 군인이 되기도 하고 들어가지 말라는 한증막 근처에서 서성이기도 했다. 겨울의 냉탕은 너무나 차가워서 발가락 하나만 담그기도 했다. 어른들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그 차가운 냉탕에 몸을 담갔다. 그때는 몰랐지만 겨울에 목욕탕에 갔다 오면 늘 기침을 하고 감기가 걸렸는데 감기가 나으려고 그러는 것이라 어른들은 말했다. 그게 실은 반대였다. 목욕탕에 주렁주렁 널려 있는 바이러스를 잔뜩 달고 왔으니.


목욕탕 안에서 유리로 보이는 로비의 모습이 있다. 난로가 있고 그 위에 냄비가 폴폴 끓고 있다. 그 안에 맛있는 오뎅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아저씨들은 목욕을 하고 난 다음 수건을 목에 걸고 발가벗은 채 난로를 빙 둘러싸고 오뎅을 하나씩 먹었다. 그 모습이 이 세계가 아닌 곳에서 치르는 의식처럼 보였다. 기묘한 건, 목욕을 하러 들어오기 전에 오뎅을 먹어도 될 텐데 모두가 목욕을 하고 나와서 오뎅을 먹었다. 목욕 후에 먹는 오뎅이 맛있다는 게 통속이자 국룰인 것이다. 내가 먼저 목욕을 끝내고 아버지가 목욕을 다 끝내면 우리도 곧 나가서 오뎅을 하나씩 먹겠구나, 유리창에 붙어 침을 꼴깍 삼켰다.


고교 친구 중에 목욕탕집 아들내미가 있었다. 여러 부러운 친구들 중에 목욕탕집 아들내미가 거기에 꼭 끼었다. 집이 목욕탕이라니, 모두가 놀랐다. 왜냐하면 집이 목욕탕이니까. 내 친구 중에 과일장수, 신발장사, 식육점 아들내미보다 목욕탕집 아들내미가 있어,라고 하는 게 더 있어 보였다.


나는 중학교 때에는 먼지 같아서 있으나 마나 한, 그런 존재였다. 그런 내 옆을 지켜준 게 주로 음악 같은 것들이었다. 형태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어떤 것에 나는 기대고 있었다. 주로 라디오를 듣고 있었고 용돈을 모아 앨범을 사러 레코드샵을 기웃거렸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음악감상실이 집 다음으로 자주 가는 곳이 되었다. 음악감상실에 갈 때면 가난했던 집에서 받은 용돈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한 번 들어가면 뽕을 뽑을 정도로 오래 앉아서 음악을 들었다. 그러면 디제이들이 하는 멘트라든가, 팝가수들의 가십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런 이야기들이 콸콸콸 귀 안으로 들어온다. 그때 들은 이야기를 지금도 하고 있으니, 대단도 하다.


목욕탕집 아들내미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 목욕탕집 아들내미는 같은 학교를 나왔지만 같은 반은 한 번도 된 적이 없었다- 카세트테이프로 매일 듣던 음악이 마이클 잭슨의 데인져러스 앨범이었다. 두 장짜리로 한 장짜리보다 훨씬 비쌌다. 그 앨범을 손에 넣었을 때 정말 기뻤다. 목욕탕집 아들내미 이름은 수찬이었다. 수찬이다, 가 아니라 수찬이었다. 수찬이는 매일 음악을 듣고 있는 내게 와서 집에 놀러 가자고 했다. 자신의 집에. 마치 여고생이 좋아하는 여고생에게 고백하듯이. 나는 슬금슬금 피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수찬이네 집에 가서야 그 집이 목욕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너네 집이?

응, 우리 집 목욕탕이야, 씻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와서 씻어.


이렇게 쿨하게 말할 수 있다니 정말 멋진 놈이었다. 수찬이 방에 올라가니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고급 장비가 있었다. JBM엠프라든가 우퍼 같은 것들. 대단했다. 수찬이는 재즈의 팬이었다. 재즈 앨범이 많았다. 이렇게 좋은 장비로 매일 밤, 고등학생 주제에 마일즈 데이비스나 쳇 베이커 같은 멋진 곡들을 듣고 있었다.


수순처럼 수찬이 집에 자주 놀러 갔다. 우리 집과는 멀어서 주말을 이용해야 했는데 가끔 주중에 가게 되면 수찬이네 집에서 잤다. 밤새도록 그 멋진 스피커로 나오는 음악을 한 없이 들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것들로 행복하다고 느꼈던 때였다. 별을 보며 아름답구나,라고 생각하는 시기가 인생에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딱 그 시기가 있다. 그 시기에 그걸 느끼지 못하고 넘어가면 아마도 영원히 느껴보지 못할 것이다. 수찬이가 나를 자주 부르게 된 계기는 순전히 마이클 잭슨 때문이었다. 수찬이의 눈을 완전 뿅 가게 만들었다.


나에게는 93년도 미국 슈퍼볼 경기 하프 타임을 장식한 MJ의 뮤직비디오가 있었다. 그 비디오테이프를 아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걸 수찬이에게 보여주었다. 엄청난 인파가 몰린 경기장에서 MJ가 전광판 꼭대기에서 춤을 추는가 싶더니 금세 운동장 무대 위로 불꽃과 함께 튀어 오르는 것이다. 그건 정말 굉장한 영상이었다. 그리고 그 멋진 자태. 수많은 사람들이 무대 앞으로 몰려간다.


그리고 데인져러스 앨범의 ‘잼’을 부른다. 잼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당시 핫 했던 크리스 크로스와 마이클 조던도 같이 나온다. 마이클 조던과 함께 농구를 하는 MJ의 모습은 천상 아이 같았다. 잼에 맞춰 무대 밑의 전 세계 아이들이 춤을 춘다. 무대 위에서는 MJ가 친구들과 칼군무를 춘다. 수찬에게는 엄청난 영상인 것이다.

https://youtu.be/nBkNQZ-6QHg


그리고 이어지는 빌리진. 빌리진의 탄생을 이야기해줬다. 빌리진은 MJ가 잭슨 파이브로 활동할 때, 모타운에 활동할 때 83년 3월에 모타운 25주년 기념 공연을 했다. 아일 비 데어를 부른 다음 잭슨 파이브가 무대 밖으로 나가는데 MJ만 무대에 서 있는 것이다. 그때 형인 티토 잭슨이 뭐야 저 녀석 왜 안 들어와?라고 생각했다.

https://youtu.be/BUcUS2cIieA


혼자서 무대에 남아서 마이크를 만지작거렸다. 모타운의 수장 베리 고디는 MJ의 빌리진을 이 무대에서 세계에 선보일 수 있게 해 주었다. 사실 그때는 모타운의 곡이 아니면 부를 수 없었는데 베리 고디는 모타운의 곡이 아닌 빌리진을 MJ가 부를 수 있게 해 주었다. 거기서 수줍게 마이클을 붙잡고 수줍은 모습으로 특별한 무대, 뉴 송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무대의 조명이 꺼지는가 싶더니 이내 스포트라이트가 비치고 빌리 진의 그 강렬한 음악에 맞춰 신들려 몸을 흔들었고 노래를 불렀다.


그 손짓과 강렬한 눈빛. 사람들은 전부 일어나서 환호를 질렀고 박수를 보냈다. 83년 3월 이후 고요하던 팝계는 MJ의 파도 속에 출렁거렸다. 그 첫 빌리진의 모습은 얼마 전에 방탄이들의 제이 홉이 완벽하게 재현을 해서 세계적으로 환호를 받았다. 그 영상들을 보면 현재의 10대들도 호비(제이홉)의 모습에서 MJ? 라며 모두가 마이클 잭슨을 안다. MJ는 현재의 10대에도 그때의 10대에게도 왕창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수찬이의 방은 목욕탕 꼭대기에 있었다. 3층이라서 부모님은 수찬이의 방에 거의 올라오지 않았다. 우리는 코냑을 홀짝이며 음악을 듣고 또 음악을 들었다. 정말 좋은 시기였다. 허세 가득한 말 – 정부가 허락한 마약인 음악에 취하고 코냑에 취해서 수찬이의 방에서 잠이 들었다. 푸르른 하늘에 발가벗은 호랑이 여자가 나타났다. 그때 복권을 사뒀으면. 호랑이의 보들거리는 털이 몸에 닿으니 방뇨의 기운이 몰려올 때쯤 수찬이가 나를 깨웠다. 6신데 벌써 깨웠다. 그리고 우리는 목욕탕에 내려가서 목욕을 했다. 아무도 없는, 하루가 시작되는 아주 깨끗한 목욕탕에 몸을 첫 담그고 목욕을 했다.


우리는 목욕을 하고 나와서 학교를 가서 시시하게 있다가 방과 후에는 또 열심히 음악을 들었다. 마이클 잭슨의 말처럼 잇츠 뷰티풀이었다. 마이클 잭슨은 수찬이의 영혼을 흔들어놓았다. 나를 따라서 주말에는 음악감상실에서 MJ의 곡을 신청해서 뮤직비디오를 잔뜩 봤다. 그의 음악에는 뭐랄까 혼이 살아 있었다. 소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목소리에 강한 록 사운드에 기계의 움직임 같은 칼군무와 화려한 의상, 어느 것 하나 빠질 게 없었다. 멋있었다. 또 멋있고 계속 멋있었다.


어느 날 저녁에 길거리 오뎅을 사 먹었다. 썩 맛있지 않았다. 일탈이 길어지면 일상이 된다. 일탈이 일상이 되는 순간 시시해진다. 에르메스도 구입하고 난 뒤 일 년이 지나면 일상이 되어있다. 시시해지는 것이다.


졸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보를 들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방에 가득 있던 재즈 앨범들은 어떻게 될까. 였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 가끔 날이 추워지면 오뎅탕을 끓여 먹는다. 오뎅탕은 대체로 맛있다. 치약을 넣어서 정말 맛없게 끓이지 않는 이상 더 맛있거나 좀 더 맛있거나 할 뿐이다. 후루룩 먹기에도 좋고, 나처럼 안 좋은 위를 가진 인간에게도 나쁘지 않다.


링크 속의 예전 동네 목욕탕은 사라졌다. 추억의 한 곳이 또 완벽하게 소거되었다. 이렇게 추억은 기억으로 남았다가 하나씩 소거된다. 그러므로 해서 오뎅탕의 맛도 추억만큼의 맛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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