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1월이 되었다. 그 말은 겨울로의 초입에 접어들었다는 말이고 곧 크리스마스가 온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크리스마스는 미국과의 분위기와 다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그저 평일처럼 훅 지나갈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브가 알차고 의미 있게 보내지지도 않는다. 코로나 이전에는 어딜 가나 북적이는 북새통의 골치 아픈 날이었다. 울고 짜고 가장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이브에 싸우고 헤어지는 커플이 우르르 쏟아진다.
또 분위기가 80년대, 90년대, 2천 년대 초반과도 많이 다르다. 오히려 그때가 더 미국스럽다. 미국스러운 게 꼭 좋은 건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는 미제가 좋아 보인다. 각 가정에 케이크 하나씩 놓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며 캐럴을 들으며 선물을 주고받았지만 2천 년대에 들어오고 나서는 그런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사라졌다.
그러면서 2015년쯤에는 성탄절 주간에 울려 퍼지던 길거리의 캐럴도 사라졌다. 그래서 배캠에서 배철수 형님도 흥청망청의 연말 분위기는 별로지만 길거리의 캐럴이 사라지고 구세군 냄비가 예전 같지 않은 건 어떻게 봐도 별로라고 했다. 그랬는데 이제 21년의 크리스마스가 되면서 코로나 시국이라 완전히 분위기에서 멀어졌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흥! 하게 되었다.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만 유일하게 성탄절이 휴일이다. 하지만 전혀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캐럴도 다양함에서 멀어졌다. 북치는 소년이나 탄일종이 땡땡땡 같은 캐럴은 이제 아예 들을 수 없고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송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11월이 되면 나는 슬슬 크리스마스 준비를 한다. 준비를 한다고 해서 딱히 별다를 건 없다. 그저 혼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12월 25일까지 죽 이어가는 것이다. 옆에서는 또 시작이군, 같은 반응이지만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근래에도 옆에서 캐럴이 좋아서 잘 듣고 있다.
먼저 잠들기 전에는 피아노곡 캐럴을 듣는다. 그리고 일을 하는 동안 루더 벤더로스의 캐럴과 빙 크로스비의 캐럴을 조금씩 듣는다. 크리스마스 장식도 하나씩 야금야금 꺼내 놓는다.
하루키가 라디오 방송으로 ‘무라카미 라디오’를 하고 있는데 크리스마스 특별 방송을 지금부터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까지 매일 한 시간씩 듣는다. 여기에서 하루키는 10곡의 하루키가 추천하는 크리스마스 송을 틀어 주는데 전부 다 좋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080
삼일에 두 편 정도 영화를 보는데 [영화 리뷰만 올리는 인스타 계정이 있어서 영화 이야기를 주야장천 올리다 보면 감독이 댓글을 달기도 하고, 제작사가 와서 댓글도 달고, 배우도 댓글을 달기도 한다. 심지어는 옆 나라 일본의 배우도 와서 조용하게 좋아요를 누르고 간다. 재미있다] 6일에 한 편 정도는 크리스마스 영화를 본다. 지금부터 성탄절 당일까지 죽 본다. 그래서 매년 봤던 걸 또 보게 된다. 그래도 재미있다. 시즌 영화는 8, 90년대의 크리스마스 영화들이 의외로 재미있다. ‘그렘린’부터 ‘34번가의 기적’이나 ‘패밀리 맨’ 같은 영화들. 촌스럽지만 내가 촌스러워서 더 좋게 와닿는다. 그렘린은 2편까지 있는데 그렘린 녀석들이 화난 얼굴을 하고 뉴욕, 뉴욕을 부르는 장면은 참 재미있다.
그리고 곤 사토시의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도 매년 볼 때마다 재미있다. 그건 대단히 이상한 현상이다. 볼수록 재미가 더해진다. 초반에 일본의 길거리 속 삼계탕 간판의 모습도 인상 깊다. 곤 사토시가 살아있었다면 그런 영화를 와장창 만들었을 텐데, 얼마나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까.
저메키스 감독의 스쿠루지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과 ‘폴라 익스프레스’는 나의 영원한 시즌 영화다. 스쿠루지의 목소리를 짐 캐리가 해서 그런지 정말 좋다. 폴라 익스프레스에서는 마빈 게이의 딸, 노나 게이가 소녀의 목소리를 낸다. 마빈 게이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마빈 게이의 죽음을 아는 사람들은 아마도 노나 게이의 목소리를 듣게 되어서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에 나오는 크리스마스 영화도 좋다. 재미있다. 예전만큼의 충만한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시즌 영화들이 계속 나온다. 부부가 함께 나오는 ‘크리스마스 연대기’도 커트 러셀과 골디 혼이 같이 나온다. 2편까지 나왔는데 아주 재미있다. 산타가 21세기에 맞춰 우당탕 하는 이야긴데 빠져든다. 역시 하늘을 나는 장면은 크리스마스 영화의 멋진 장면이다. 작년에도 딱 이맘때 크리스마스 시즌 영화를 소개하고 있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140
무엇보다,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이 나에게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는 일이다. 내가 만드는 크리스마스 카드는 특별해서 단 시간에 만들지 못한다. 하루 만에 끝나지 않기 때문에 몇 날 며칠 카드를 만들면서 크리스마스 준비를 한다. 컴퓨터로 레이아웃을 잡고 사진을 여러 장 일일이 선별해서 작업을 한다. 텍스트도 그에 맞게 다시 집어넣는다. 그렇게 하다 보면 진짜 크리스마스라는 기분이 든다. 작업이 끝나면 카드로도 만들고 액자에도 넣을 수 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의 기억이나 크리스마스에 대한 생각을 주위 몇몇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라는 관념은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인데 사람들 각자가 느끼는 크리스마스는 다 다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도 아주 몹시. 단지 드러내 놓고 왁자지껄하게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 나는 크리스마스에 관한 건 6세 아이처럼 좋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