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하는 수많은 음식을 하지 않게 하는데 9년 정도가 걸렸다. 부모세대가 물려받은 전통이라는 이 고난만이 가득한 노동을 줄이려고 마찰, 타협, 설득, 공감 같은 시도가 있었고 그 기간이 9년 정도 만에 올해 추석에는 음식을 아예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까 올해 구정까지는 음식을 했다는 말이다.


우리 집은 일 년에 명절을 합쳐 총 세 번의 제를 지낸다. 가족도 조촐하거니와 음식을 하는 그 중노동에 비해 전통을 앞세워 우리가 느끼는 그 정당함은 별로 없다는 것을 어머니에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힘들었다. 무엇보다 어머니는 나와 동생의 말보다는 친구들이나 옆집 아주머니의 말을 더 신뢰하는 편이다.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을 차리는 이유를 물어보니 ‘누가 되지 않게, 다른 집이 봤을 때, 옛날부터 해 왔으니까’ 같은 이유가 있었다. 음식을 먹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이 먹는 건데 사람 수는 적은데 이렇게 음식을 많이 차리면 후에 두고두고 꾸역꾸역 먹을 수밖에 없다.


보통의 집에서는 음식을 먹고 난 후에 남은 음식(이라고 부르는 식은 음식이나 나머지 음식)은 어머니들이 자신의 집에서 먹는 것에 반해 우리 집에서는 내가 잔반을 다 처리해야 한다. 특히 엄청난 나물과 딱딱해져 버린 생선을 먹어 치워야 하는데 참 별로였다.

전통이라는 문화가 부모세대의 머릿속에 가득 들어가 있으니 그게 악습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전통이라는 건 좋은 것, 해야만 하는 것,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 옆집에서 보기에 누추하게 보여서는 안 되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이걸 바꾸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최초로 돌아가서 그때는 5년이면 될 줄 알았다.


상차림이 있다면 3분의 1씩 줄여가는데 3년씩 걸렸다. 이렇게 한 상 가득 명절에 음식을 차리게 된 건 그렇게 오래전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부흥기를 맞이해서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국가차원에서 그렇게 분위기를 만든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 대부분의 서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로 허덕이기 때문에 너무 잘 차려서 명절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니 오래전 조상부터 이렇게 명절에 분에 넘치게 큰 상을 다 가릴 정도로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리는 건 아니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또, 엄청나게 흘러넘치는 음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살이 찌는 것도 생각을 해야 했다. 특히 남은 음식을 전부 때려 넣고 끓이는 전 찌개를 없애는데도 몇 년이 걸렸다.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어서 먹지 않았더니 자연스럽게 전 찌개를 끓이지 않았다. 그것도 다 먹어 없애야 하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런 걸 먹지 않는다. 거기에 방송 같은 곳에서도 언젠가부터 전통상차림이 너무 과하다는 말을 하는 곳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머니들이 아침에 하는 방송을 철석같이 믿고 보기 때문에 아침에 병원에서 진찰하지 않고 티브이 생방송에 잔뜩 나온 의사들이 건강 어쩌고 하는 말을 듣는데 그중에서 몇몇 의사가 명절에 하는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공격적으로 밀어붙였다.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아버지이고 아버지가 좋아했던 음식 위주로 간단하게 차려서 제사를 지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구색에 신경이 쓰인다면 한 접시씩 시장에서 만들어 놓은 걸 사 먹으면 된다. 그렇게 9년 동안 하나씩 하니씩 음식을 줄여 나갔다. 떠먹는 음식이 있는데도 탕국에, 찌개에, 고기에. 이래서는 음식이 공포스러울 뿐이다. 가족이 많다면 모를까 온 가족이 다 모여도 5명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조촐하게 음식을 하고 고요하고 편하게 보내는 명절이 우리에게 훨씬 나은 추석이다.


결국 9년 만에 이번 추석에는 아무 음식도 하지 않았다. 동그랑땡도, 송편도 요만큼씩 시장에서 사 먹었다. 어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렇게 사 먹는 동그랑땡과 송편이 훨씬 맛있다. 왜냐하면 요만큼 먹기 때문이다. 먹다 먹다 남아서 보기 싫을 정도의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명절이라는 게 끝나고 나면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린다. 행복하게 보내야 하는데 점점 그렇게 보내지 못하는 가족이 늘어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오전 라디오를 듣는데 사연으로 남편이 이번 명절에 시댁으로 친정으로 천 킬로미터를 운전했다며 고맙고 미안하다는 아내의 사연이 나왔다. 그러고 디제이가 자신도 모르게 바로 “보통 이 정도 거리면 번갈아가면서 운전을 할 텐데 말이죠”라고 하고서는 뒷수습을 하는 말투가 나와 버렸다.


명절에 음식만 줄여도 꽤나 편안한 연휴가 된다. 다 모여서 라면을 먹어도 맛있다. 추석에는 역시 컵라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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