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을 하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노을이 좋다. 그대로 서서 매직 아워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생각이 든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가위가 되면 동요 ‘노을’이 라디오에서라도 나온 것 같은데 느닷없이, 두부를 칼로 싹둑 자르듯이 끊어졌다.


노을뿐 아니라 동요 자체도 들을 수 없다. 티브이 속 어린이들은 트로트에 열을 올리고 그 모습에 어른들이라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박수갈채를 보내니 어린이들에게 동요가 무쓸모처럼 소거된 것 같다.


동요가 듣고 싶어 한 번은 유튜브로 오연준 어린이가 부르는 고향의 봄을 듣고 가슴이 터질 만큼 좋아서 그대로 댓글을 달았더니 누군가 표현이 너무 예쁘다고 해주었다. 그건 내가 예쁘게 글을 썼다기보다 오연준 어린이의 노래를 듣고 그 마음이 아마도 글로 나오지 않았나 싶다. 그게 동요의 힘이라면 힘이고 기능이라면 기능이지 않을까.

노을의 가사도 눈물이 나올 만큼 좋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쯤 누구나 알고 있다.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라는 상냥한 표현에서 풍경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초가지붕 둥근 박 꿈꿀 때, 라는 말도 예쁘다. 아아 정말 가을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오른다.


정말 노을의 가사가 좋아서 조깅을 하다가도 이맘때에는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에 취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눈앞의 노을은 저리도 붉게 타오르는데 도대체 동요 노을은 어디로 쏙 들어가 버렸나.


노을을 부른 어린이가 귄진숙(양)이다. 30년도 더 됐으니까 이제 권진숙 양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권진숙 양의 노을이 듣고 싶어 진다. 그리하여 유튜브를 돌려 찾아보면 당시, 84년도의 동요대회로 갈 수 있다.


권진숙 양은 평택에서 왔는데 그곳의 장점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을 잘한다. 그리고 서울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에도 똑 부러지게 답을 한다. 여자 아나운서는 마지막으로 그럼 서울과 평택 중에 어디에 살고 싶으냐고 물으니까 귄진숙 양은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


귄진숙 양은 약대를 나와서 제약회사를 상대로 약에 관련된 컨설턴트 하는 회사의 대표로 있다. 노을이라는 동요는 권진숙 양을 위한 노래였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잘 불렀다. 이 곡을 만든 이동진 선생이 2010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권진숙 양에게 하고픈 메시지를 전했다. 찾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 당시의 기사에는 동요제가 열렸을 때 모든 작사가와 작곡가들이 권진숙 양의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그만큼 노을이라는 동요가 사람 마음의 어떤 부분을 건드렸다. 어찌 되었던 요즘은 전혀 들을 수 없다. 찾아들어야 하는 노래가 됐다. 그래서 찾아 듣곤 한다.


오늘의 선곡. 권진숙 양의 ‘노을’ https://youtu.be/xwxAdmKHlrY


다시 뒤를 돌면 매일 보는 풍경이 처음 보는 그림 같다.




요즘은 매일이 영화로운 나날이다.

이 색채와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 달과 달빛, 그리고 그 위의 별까지.

장면 장면이 영화인 요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