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가 죽기 전에 담가 놓은 술이라며 썩지 않았는지 먹어보라고 했다. 술은 한 15년은 되었다. 닫아 놓은 뚜껑도 잘 따지지 않았다. 겨우 딴 술을 마셔보니 보통 집구석에 오랫동안 처박아놓은 술의 그 맛이다. 탁 쏘는 맛이 있지만 버섯으로 담가 놓은 술이라 술과 버섯이 섞인 기묘하고 마시면 얼굴이 찌푸려지는 맛이었다.


술은 그저 슈퍼에서 바로 구입한 술이 맛있다. 소주도, 막걸리도, 맥주도, 위스키도 바로 구입해서 마시는 술이 맛있지 이렇게 오랫동안 묵힌 술은 그 알 수 없는 기묘한 맛 때문인지 맛도 없다.


아버지들은 왜 그렇게 술을 만들어서 집구석에 꼭꼭 숨겨 두었을까. 내가 어릴 때 마당이 있던 집에 살 때 거기 주인집 형과 매일 재미있게 놀았다. 자전거 타고 놀고, 공을 차고, 특히 나는 장난감을 좋아해서 장난감 하나만 손에 쥐어 주면 군말하지 않고 하루 종일 잘 놀았다. 매일이 대환장 파티였다. 그 주인집 아주머니와 어머니는 너무나 친해서 친구 먹고 할머니가 된 지금도 같이 계중을 하고 있다. 인연이란 알 수 없는 곳에서 꽃을 피운다.


그때 주인집 아저씨가 오랫동안 담가놓은 술을 뜯은 적이 있었다. 그게 자두주였는데 유리로 된 큰 항아리 같은 곳에 담가놔서 양이 많았다. 아저씨는 그 안에 있는 자두를 전부 꺼내왔는데 주인집 형과 그 자두를 홀짝홀짝 집어 먹었다. 달달하니 즙이 죽 나오는 게 너무 맛있었다. 그때 형과 몇 개 집어 먹고 난 후에 기억이 없다.


마치 우물 속에 들어가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이틀 뒤에 나온 것 같았다. 기억 속 자두주를 담근 자두는 맛있는데 어른이 되어 마시는 버섯주는 참 맛없다. 요즘도 집에 술을 담그는 사람들이 있다. 놀러 가보면 작년에 뭐를 넣었네, 재작년에 담가 놓은 술이네, 라면서 한 잔 줄까.라고 하는데 나는 늘 싫다. 맛이 일단 없다. 게다가 혀로 느껴지는 술맛이 다 독하다. 집에서 돼지고기를 삶으면 소주나 맥주가 어울리지 담가놓은 술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당이 있던 그 오래전 집이 생각난다. 옥상이 있어서 옥상에 올라가 빨래를 걷곤 했다. 빨래는 옥상의 빨랫줄에 걸려 하루 동안 묻은 시름을 털어낸다. 고민과 고뇌가 새까맣게 껴 있으면 엄마는 빨래를 해서 옥상에 늘어놓았다. 바람이 불러와 빨래에게 ‘괜찮아’라고 말해 주면 빨래는 좋아서 빨랫줄에서 춤을 추었다. 빨래는 같은 모습이 없다. 꼭 인간들 같았다. 축축했던 빨래는 옥상에서 아름답게 말라갔다. 비가 오면 빨래집게 끝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바람이 불면 빨래집게들이 파르르 빨랫줄에서 떨었다. 물방울이 빨래집게 끝에 맺혀 있을 때 손가락으로 건드리면 밑으로 툭 떨어졌다. 그 장면이 마치 영화의 슬로 테이크처럼 지금 지나간다. 따스하면서도 늙어가는 햇살이 아련하다. 아름다웠다.


아버지는 어딘가에 술을 담가놨다. 담가놓은 술은 누군가와 함께 마시기 위함이다. 아버지는 그랬다. 누군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집에 오면 약간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이건 말이야, 라며 담가 놓은 술을 뜯었다. 귀한 술을 받아먹는다며 우리에겐 용돈을 쥐어 주던 아버지 친구들. 과거에 머문 시간은 늘 아름답다.  


아버지가 담가 놓은 술은 참 맛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법 때문인지 기분 좋게 마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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