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풍 오마이스가 온다고 한다. 태풍 하면 가장 생각나는 영화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였다. 정말 재미있게 봐서 주제가도 좋아했고 사쿠와 아키의 사랑이야기가 남긴 여운이 잔존물처럼 마음속에 남아있기도 했다. 후에 우리나라에서 차태현과 송혜교가 ‘파랑주의보’로 리메이크를 했는데 원작에 반도 못 미친다. 감독을 혼내고 싶었는데 요즘 다시 보면 좀 괜찮으려나.
바닷가에 태풍이 오면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당연하지만 긴장을 한다. 태풍이 오면 파도를 평소보다 몇 배는 거대하게 만들기 때문에 태풍이 오면 악착같이 나가서 사진을 찍었던 적이 있었다.
그 사진들을 꺼내려고 보니 전부 시디로 구워놨는데 컴퓨터는 시디롬이 없다. 뭔가를 해서 시디에 있는 방대한 사진들을 옮겨와야 하는데 너무 귀찮다. 태풍이 오면 바닷가에 나가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대부분 위험해서 안 된다고 하는데 사실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만약 카메라에 망원렌즈가 달려있다면 그저 어딘가에 몸을 웅크린 채 줌으로 주욱 당겨서 찍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오히려 태풍이 오면 건물 주위가 위험하다. 간판이 대역죄인처럼 춤을 추듯 마구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테트라포드는 어지간한 태풍에는 끄덕하지 않기 때문에 테트라포드에 부딪힌 파도는 온몸으로 부서져 엄청난 포말이 된다.
예전에는 사진을 하는 선배들과 같이 나와서 전부 스나이퍼처럼 파도가 치면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댔다. 그 와중에도 나는 렌즈찰탁식이 아닌 그저 똑딱이나 폰으로 틱틱 찍었다. 그래서 렌즈에 줌 기능이 없기 때문에 피사체를 크게 담으려면 내가 피사체 가까이 가야 한다.
이 날은 태풍 18호 차바가 온 날이다. 카메라는 없고 폰만 가지고 있었다. 몇 년 만에 오는 태풍 치고는 바람이 엄청나다. 소형급 태풍이라고 하지만 시간당 100밀리미터의 비를 퍼붓고 있다.
차바 이전, 매년 태풍이 오면 바다로 나가서 사진을 찍었다. 평소에 보지 못하는 광경을 바다와 하늘은 만들어낸다. 바람을 맞으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좀 우습지만 굉장히 아름답다고 느낀다. 파도의 파고를 보면 마치 바닷속 포세이돈의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무실에 앉아있거나 관심이 없으면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나처럼 게으르고 모든 걸 귀찮아하는 사람에게 태풍은 기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차 문을 열어 놓으면 차 문이 꺾일 것 같고 차 안으로 비바람이 한꺼번에 우악스럽게 밀려올 것만 같다. 앞으로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오직 태풍만이 이런 바람을 만들어낸다. 비가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당연한 법칙도 태풍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허술하게 달아놓은 간판은 어김없이 뱅그르르 도로를 굴러다닌다. 뭣도 모르고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온통 공포 영화의 화면 속 엑스트라 같은 몰골로 바뀐다. 그렇지만, 역시, 무엇보다 바다의 모습이 눈에 가장 들어왔다. 거부할 수 없는 이 기분. 바다는 파도의 포말을 거침없이 뱉어내며 포효한다. 고오오오오옹하며 거대하게 울부짖었다.
나는 이 모습에 도취되었다. 태풍이 노래를 부른다. 그래 ‘태풍의 노래’를 적어보자. 태풍을 좋아한 한 소년이 태풍의 노래에 청력을 빼앗겨 버리지만 매년 오는 태풍의 소리만은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차바가 빠르게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