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든 올여름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조금씩 달렸다. 8월은, 지금까지는 비가 오는 날이 많았는데 조깅을 하러 나가면 소강상태에 있거나 흩날릴 정도로 오면 그냥 달리거나, 비가 쏴아 쏟아지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강변 중간중간 마련해 둔 몸을 푸는 곳까지 가서 거기서 근력 운동을 좀 하고 온다. 비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는 날에 거기에 가면 사람이 1도 없기 때문에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뭐라고 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를 수 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840
이 글을 쓴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일 년 전이라니.
조깅을 하는 코스가 있는데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는 반대 코스로 달린다. 그러려면 강을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면서 저기의 다리를 한컷 찍어봤다. 요즘은 계절이 막 바뀌려고 해서 그런지, 물의 온도의 변화 때문인지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 강변으로 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물결처럼 보이지만 그게 물결이 아니라 물고기들이 주둥이를 수면 위로 오구오구 드러내고 떼로 몰려다닌다. 그런 모습은 꼭 열심히 달리고 있을 때 보여서 갑자기 멈추어서 사진을 찍기가 좀 그랬다. 달리는 호흡이 끊어지기 때문에 계속 달려야만 했다.
오리가족의 모습은 우리가 바라는 행복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빠 오리가 위험한 게 있나 없나 앞장서서 개척한다. 그리고 나머지 오리가족이 뒤 따라간다. 가장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다. 오리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형성한 가족이 붕괴되는 모습이 뉴스를 늘 장식하니까 아이러니다. 아빠 오리는 새끼 오리들이 위험할까 무슨 일이 있을까 앞장서는데 방에서 죽어가는 3살 아이를 팽개친 엄마는 어떤 생각일까.
오리가족이 졸졸졸 물 위에 떠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마음이 편안하다. 어린 시절의 잠깐이지만 행복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저녁 준비로 고등어를 굽고 동생은 엄마 옆에서 종알종알 노래를 부르고 아버지는 회사에고 오고 있고 나는 티브이를 보며 저녁시간을 기다리는 모습. 그러다가 아버지가 버스 정류장에 내릴 시간이면 나는 동생과 함께 마중을 간다. 동생과 이 버스, 저 버스, 내리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다가 한 버스에서 아버지가 내리면 동생은 아버지에게 달려가고 아버지는 동생을 안아 올리고. 오리 가족은 내 유년의 잠깐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린다. 오리 가족의 모습은 정말 별거 아닌데 일단 강변으로 나와서 조깅을 해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건물 안에만 있다면 전혀 볼 수 없다. 그래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이 요사스러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라도 매일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
비가 온 후 갠 하늘이 좋다. 저기 구름 사이에 달이 숨어 있다. 달이 빼꼼하며 고개를 내미는데 그런 모습을 잘 기억해 뒀다가 멋지게 적어보고 싶다. 구름의 냄새를 맡고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달은, 생명은 지니되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체들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매일 밤 적당한 거리의 하늘에서 빛을 땅으로 쏟아낸다. 달이 없다면 정말 이 세상은 어떤 식으로 변할까. 그러고 보니 살선생, 타코 센세이가 나오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암살 교실에서는 달이 반 정도 파괴된다. 엄청 재미있게 봤는데. 영화가 나왔을 때 예리나 선생으로 카라의 강지영이 나온다.
달은 늘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달을 보며 누군가를 생각하고 달빛이 비치는 가로등에서는 시를 그리기도 한다.
검은 밤 가운데
그대 이름을 써 봅니다
같은 오글거리는 글귀도 달밤에는 아무렇지 않다.
또 열심히 달리다 보면 아빠를 졸라서 밖으로 나온 귀염둥이들을 잔뜩 볼 수 있다. 저 녀석 뒷자리가 편한지 자세가 딱 저 자세로 줄곧이다. 아빠가 잠시 멈춰 전화를 받아도 딱 저 자세다. 강변을 따라 저녁에 조깅을 하면 엄빠를 따라 산책 나온 귀염둥이들이 많다. 전부 행복해 보이고 집에서 귀여움 받으며 잘 자라고 있는 느낌이 충만하다. 뉴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학대받고 버림받는 강아지들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며칠 전에 초딩 5학년 정도로 보이는 녀석이 강아지를 몰고 산책을 하면서 전화를 받으며 나불나불 가는데 강아지가 가기 싫다고 멈칫멈칫거리니 목줄을 확 잡아당기는 것이다. 제길.
신나게 한 판 달리고 도착하면 엘베에서 한 컷 올리고 들어간다. 보통은 그저 물을 마시는데 텀블러에 받아 놓은 물이 없으면 음료를 사 먹는다. 미숫가루처럼 보이지만 아이스라테다. 샷 추가.
이제 저녁에는 제법 바람이 차다. 땀도 폭염 때만큼 나지 않는다. 윗도리가 땀에 젖긴 젖지만 축축하지는 않다.
그간 매일 조깅을 하면서 선택에 대해서 왕왕 생각을 한다. 우리는 늘 선택 앞에서 고민을 하고 더 나은 선택을 못 한 것에 후회를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두 가지의 선택지에 섰다면 근래에는 선택지가 여러 갈래로 있다.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그 사이 길로 갈까, 선택의 폭은 더 넓고 더 어려워졌다. 선택을 하고 나서 늘 찝찝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잘못한 선택이라면 그 선택을 잘 한 선택으로 바꾸면 된다. 내가 택한 선택지가 비록 택하지 못한 선택지보다 못하지만 뭔가를 해서 이 선택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이 들게 바꾸면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서 옳은 선택이라도 그 결과가 옳지 못한 경우가 되는 것을 많이 봤다. 요컨대 일류대학에 가서 모두가 이 사람은 부자에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초유의 기업에 들어가면 그 사람은 앞날이 탄탄할 거라 생각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좋은 직장은 있을 수 있으나 좋은 직업은 딱히 없다. 좋은 직장에서 좋지 못한 업무를 맡거나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해 조직에 귀속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며 매일을 보낸다면 그건 좋은 직업은 아니다. 여의도 증권가가 몰린 마천루에서 화이트 컬러들이 일을 한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된다. 모두가 우르르 흘러나와 점심밥을 먹기 위해 북엇국을 잘하는 집 앞에 긴 줄을 선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에 와서도 점심을 먹으려면 북엇국 집 앞에 줄을 서야 한다. 누구나 식당을 하기는 꺼려한다. 힘들다며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 줄을 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뭐가 좋고 나쁘고 그걸 정할 수 있을까. 좋은 직업이란 따로 있지 않다. 귀천이 없다.
글을 쓰기로 생각한 사람은 선택에 있어서 어쩌면 옳지 못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특히 문학을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을 한다는 건, 글을 쓴다는 건 세상에 가장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