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라오스에는 대체 뭐가 있는데요?


연이은 하루키 이야기.


하루키의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보면 시벨리우스에 대해서 나온다. 시벨리우스가 핀란드의 자랑이라는 것도 이 글을 읽으면서 알았다. 무엇보다 시벨리우스가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처럼 오래된 음악가인 줄 알았는데 시벨리우스는 1957년에 죽었다.


그는 죽기 전까지 집에 수도시설을 하지 못하게 했다. 작곡하는데 시끄럽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온 가족이 너무나 불편하게 지냈다고 한다. 시벨리우스가 죽고 난 후 핀란드 국가가 그 집을 가족들에게서 구매한 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핀란드는 독립되기 전에 러시아 지배를 받으면서 덩달아 시벨리우스 역시 인세를 못 받고 오케스트라를 작곡하고 싶었지만 빚 때문에 바이올린의 소품곡 정도만 작곡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천재성이 국가가 놓인 이유 때문에 인정을 못 받은 케이스였다고 할까.


그러면서 하루키는 시벨리우스가 죽고 난 후 ‘아마도‘ 가족들은 이제 집에 수도를 놓고 좀 편하게 지낼 수 있겠군, 아버지 정말 깐깐했잖아,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하며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나도 무척이나 좋아해서 거의 다 본 편이다. 특히 ‘안녕하세요’와 ‘꽁치의 맛’은 꽤나 여러 번 봤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면 그 이후에 나온 영화들이 그의 영화에 얼마나 신세를 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안녕하세요'는 59년 영화인데 미장센과 대사, 호흡이 전혀 50년대 영화 같지 않다. 컴퓨터와 휴대전화만 소거되었지 지금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어색함이 없다. 특히 미장센은 놀랍다. 중산층의 가옥이 아주 현대식이며 통일된 균형감과 안정된 구도를 보여준다. 컬러풀한 서랍장, 녹색의 주전자, 세련된 등과 빨강과 노랑의 빨래, 지붕의 색채는 마치 칸딘스키의 그림 속 컬러를 보는 듯하다.


꽁치의 맛에서 청순하던 이와시타 시마는 이후 아와즈 누님으로 10년에 걸쳐 야쿠자의 아내로 나와서 또 한 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의 감독 윤단비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보며 꿈꿨다고 한다. 그래서 ‘남매의 여름밤’을 보면 야스지로의 영화처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남매의 여름밤을 보는 동안 옥주와 동주의 가족을 보는데 이상하게 나의 유년시절 깨끗한 여름밤 기억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죽지 않으면 따라다닐 어린 시절의 지독한 선명한 여름밤의 기억. 그 기억을 통해서 현재가 힘들지만 어떻게든 삶을 지탱하게 만드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하루키를 통해 시벨리우스, 오즈 야스지로, 남매의 여름밤을 관통하는 여름이었다. 이렇게 해변에서 하루키의 ‘라오스에는~‘는 읽으며 좋았는데 나중에 보니 책을 해변에 놔두고 온 모양이다. 아, 시벨리우스.

여기까지 참 좋았는데, 책을 저기에 놔두고 온 모양이다 ㅠ


책 잃어 버리고 분노의 조깅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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