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매의 호박잎 쌈


여름이 되면, 이렇게 이글이글 거리는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만 되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그런 음식은 순전히 추억에 기인한다. 그래서 귀찮아도 해 먹게 된다. 막상 먹으면 맛있지만 추억의 맛인지 어떤지 가물가물하게 된다.


외가에서 내 외할매의 품에 안겨 할머니가 쌈 싸서 입에 넣어주면 오물오물 먹었던 음식들이 있다. 외할매는 손주들이 많았지만 특별히 나를 자주 안고 있었던 건 어린 시절에 형편이 좋지 않아서 세 살 때부터 네 살 정도까지 집에서 떨어져 외가에서 지냈다.


그러다 보니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고, 밥 먹기 싫어서 울고, 밖에 나가서 놀다가 엄마 없는 놈이라고 놀림받아서 울고, 그런 내가 딱했던지 외할매는 울고 들어온 나를 안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땀을 흘리는 나를 닦아 주고 배고프니까 밥을 먹여 주었다.


어릴 때라 기억이 거의 없지만 사진을 보면 외가에서 빼빼 마른 어린놈의 꼬꼬마인 내가 늘 울고 있거나 울고 난 다음 퉁퉁 부어 있거나, 그런 사진들이 있어서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술처럼 기억이 형성된다. 그때는 어린이였지만 여름에 땀을 흘리고 들어오면 외할매가 손수건을 물에 적셔 얼굴을 닦아 줄 때 나던 그 냄새가 좋았다. 할머니의 냄새가 손수건에서 났다. 물에 적셔 희미해진 할머니의 냄새가 내 얼굴에 조금씩 와서 붙었다.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서럽다가도 할머니의 품에서 잠이 들고 할머니 손을 잡고 시장을 따라가곤 했다. 외가는 불영계곡 중간 즈음에 있어서 어린놈의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은 없었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한들 거기서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외할매는 내가 먹고 싶다고 하는 아이스크림은 꼬박꼬박 사주었다.


외가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고 그 마을 아이들과 개울가에서 놀다가 흙으로 샤워를 하고 집으로 들어오면 할머니는 나를 씻기고 선풍기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할머니는 여름이면 호박잎을 삶아서 감자를 넣고 뜸을 들여 밥을 지었다. 밥을 조금 호박잎에 올리고 된장을 찍어서 후후 불어서 입에 넣어 주었다.


그 맛이라는 게 맛 자체는 기억날리는 없지만 그렇게 먹었다는 추억 때문에 이런 여름에 호박잎과 양배추를 삶아서 밥을 싸 먹으면 외할매의 모습이 가물가물거리지만 밀려온다. 할머니와의 마지막 기억은 중학생 때까지다. 나에게는 친할아버지도, 친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다. 그래서 외할매 밖에 나에겐 오롯한 할머니였다. 손주들이 많았어도 대부분 서울에서 외삼촌이나 이모들과 같이 지냈지만 나는 집 형편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툭하면 외가에서 지냈다. 그때 내 곁을 지켜주던 사람이 외할매였다.


중학생 때 외할매의 손을 잡고 서울에 잇는 이모집과 외삼촌 집에 갔을 때였다. 외할매는 전철을 타면 꽤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나를 잃어버릴까 봐 손목을 꽉 잡았다. 아아 아프다고 해도 외할매는 그 많은 사람들 틈 속에서 나를 놓칠까 봐 꽉 잡았다. 겨울의 새벽에 청량리역에 도착해서 외할매와 나는 육개장을 먹으러 들어갔다. 나는 갈비탕을 주문하고 할머니는 육개장을 주문했다. 나는 매운 걸 못 먹었는데 외할머니의 육개장이 아주 맛있어 보였다. 밥그릇에 나 좀 떠 달라고 했는데 밥그릇에 요만큼 떠더니 할머니는 큰 그릇을 내 앞으로 밀어줬다. 


할머니는 그때 무슨 약을 잘못 먹었던지 혀가 말라서 갈라진 모습이었다. 그런데 친척들 집에서 할머니에게 신경을 안 쓰는 거 같아서 떼를 써서 외할매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내려왔다. 그때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 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내 외할매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외가에 가면 외가의 냄새보다는 외할매의 냄새가 있다.


호박잎 쌈, 양배추쌈, 오이를 그대로 듬성듬성 썰어 넣어서 만든 오이냉국은 내 외할매의 음식이다. 오물오물 먹고 있으면 헤어졌지만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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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6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관 2021-08-07 12:36   좋아요 0 | URL
여름만 되면 호박잎으로 쌈싸먹고 싶고, 그렇게 먹고 있으면 외할머니 생각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