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서정시가 가슴을 울컥하게 한다. 참 별거 아닌데 거기서 내 마음속 아주 연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무엇인가 때문에 저릿저릿하게 된다. 1900년대에 태어나 시인으로 살다가 1970년대에 죽은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가 그렇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시인의 이 시에서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융해되어 사라지는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점점 이상해지더니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둠 속에 사라지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슬프면서 아름답다. 아마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당시 무엇 때문에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무게에 짓눌려있다가 시를 읽고 울컥했을지도 모른다.


김광섭 시인은 말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그때 이 시를 썼다. 아마 코마 상태에서 그리운 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는 시간이 지나 유심초의 노래로 다시 태어났다. 유심초의 노래를 들어보면 운율 때문에 가사가 약간 바뀐 부분이 있다. 아주 신나게 흘러가지만 이미 연약한 부분이 타격을 받은 내 마음은 신나는 리듬에도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김광섭 시인의 친구였던 김환기 화백도 이 시를 읽고 그대로 그림을 그렸다. 그 제목이 바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그림이다. 점점 그리워지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김환기 화백은 점을 그렸다. 간절함이 가득해지면 점은 짙음을 더해가고 깊어진다. 김환기 화백도 몸이 너무 아팠다. 결국 몸이 너무 아파서 작업을 할 수 없었던 김환기는 수술을 받는다. 1974년에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회복 중에 침대에서 떨어져 의식 불명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허무하게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은 부암동에 환기 미술관을 세우고 2004년에 죽음 후 남편이 묻힌 곳 옆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김향안의 본명은 변동림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시인 이상(김해경)의 아내였다. 김환기의 그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김광섭의 ‘저녁에’를 보고 있으면 그 깊은 세계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예술이란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뭔가를 느끼게 된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면, 오래전 김광섭 시인과 김환기 화백이 본 그 수많은 별들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 이 세계는 이렇게 순환하여 우리를 이어준다. 이렇게나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별이 되어 다시 만나 꽃들 피운다.


https://youtu.be/EBQzMrr3f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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