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두 알씩 먹는 별거 아닌 계란을 부침개로 만들어 먹으면 똑같은 일상이 조금은 똑같지 않은 일탈 같은 기분을 준다. 하루키식으로 말하면 소확행인 것이다. 나는 하루키를 너무 좋아하지만 하루키가 만들어 낸 이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이나 어딘가에서 쓰지 않는다. 이게 유행이 되어 버린 이후에는 더 말하지 않는다. 작지만 소소한 행복이라는 말에서 주는 평온함과 아주 따뜻함이 있지만 어쩌면 그건 하루키라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세계적인 작가의 입장이라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일상의 굳건한 방어막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일상을 침범할 수 없도록 갉고 닦았다. 그렇기에 매일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우리는 작은 행복을 매일 느끼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도 엄청난 노력을. 그래야 하루키가 말하는 소확행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계란 부침개는 ‘작지만 소소한 행복’이라기보다 ‘악착같이’ 밀가루 조금과 계란을 저어서 팔이 아플 만큼 물처럼 만들고 파를 칼질을 해서 (조금 거짓말 보태서) 죽기 살기로, 요리 같지 않지만 요리를 해야 조금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기분을 맛보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관념은 금방 사라지고 빨리 끝나기 때문에 소소한 행복은 나의 인생에서, 내 일상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악착같은 행동으로, 죽기 살기로 해야 아주 작은 행복에 가까운 덜 불행한 무엇인가가 딸려 오기 때문에 그것을 길게 느끼고 길게 가져가려면 (작지만 소소한 행복이 아니라) 이를 악 물고 노력을 해서 얻은 행복이어야 한다.


소확행은 하루키가 만들어냈는데 하루키에게만 어울리는 것 같다. 매일 오전에 조깅을 하고 맥주를 마시며 그 사이와 간극에서 얻는 작은 행복은 하루키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생활이 불편하고 마음이 불안한 사람이 꽃등심을 먹는다고 해서 진정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일상이 팍팍하고 반복적인 루틴을 좋아하고 적응이 이미 된 나도 지겹다고 느낄 때 계란 부침개를 만들어 먹는다. 준비가 필요하고 과정이 있어야 하고 만드는 동안 어울리는 음악도 틀어야 한다. 어떤 음악을 주로 듣냐고 하면 미트로프의 I’d Do Anything For Love다. 굉장히 강렬한 기타 러프로 시작하면서 피아노의 연주가 따라온다. 이 노래는 12분짜리 대작으로 강렬한 록 음악인데 사랑에 관한 노래다. 록 음악인데 피아노가 주가 된다. 그런데 피아노가 줄기를 이끌고 가지만 록의 다른 연주에 방해를 주지 않는다. 기타와 피아노가 이렇게도 잘 어울리는 록 음악이 있을까. 요즘 팝은 컴퓨터로 만든 음악이라는 게 느껴지지만 미트로프의 음악에는 악기들의 직접적인 연주가 다 살아있다. 그래서 음악을 크게 들으면 그 섬세한 부분까지 진지하게 연주되는 록음악의 진수를 들을 수 있다. 거기에 미트로프의 마성적인 목소리까지.


미트로프는 럭비선수였다가 노래를 하게 되었다. 미트로프 하면 재미있는 게 얼굴이 험상궂게 생겨먹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음악 때문인지, 아니면 사생활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화 ‘노팅힐’과 ‘러브 엑츄얼리’에 주인공들이 언급을 한다. 노팅힐에서는 줄이라 로버츠와 휴 그랜트가 첫 날밤을 보낸 후 대화를 하면서 미트로프를 언급한다. 탑스타로 살아가는 고충에 대해서 애나가 말을 하면서 가슴도 수술해야 하고 어쩌고 하면서, 미트로프를 언급하는데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트로프에게만 대시를 받지 않으면 된다, 같은 뉘앙스였는지, 어떻든 이상한 탑스타에 미트로프가 있는 것이다. 또 러브 엑츄 얼리에서는 리암 니슨과 이제는 청년이 된 아들 토마스 생스터의 대화에서 미트로프가 언급된다. 미국에는 미트로프라는 이상한 음악을 하는 가수도 있다 같은 말을 아버지가 한다. 두 영화 모두 영국의 영화고 두 영화에서 아무튼 미트로프를 이상한 음악을 하는 이상한 가수로 언급하지만 밉지 않게 말한다. 나는 학창 시절에 미트로프의 음악이 좋아서 그의 앨범을 구입해서 듣곤 했다.


미트로프의 ‘아 두 에니싱 포 러브’는 정말 좋은 노래니까 유튜브로 한 번 감상해보자. 앨범 버전(12분)이 있고 뮤직비디오 버전(7분)이 있는데 물론 노래는 앨범 버전에 좋다. 하지만 뮤직비디오를 보면 미트로프가 야수(영화 미녀와 야수)로 분장해서 나온다. 뮤직비디오는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은데 몹시 아름다운 여성이 나온다. 괴물이 된 미트로프가 그 인간 여성이 아름다워 수영 아닌 수영을 하는 장면을 몰래 훔쳐본다. 그리고 떠나면서 목걸이 같은 걸 남긴다. 산통 깨는 얘기지만 요즘 그랬다가는 바로 수갑이다. 어떻든 뮤직비디오는 아름답고 노래는 너무 좋다.


앨범 버전은 12분이니까 이 노래 한 곡이 끝나면 계란 부침개가 완성된다. 만드는 동안 퍼지는 냄새 또한 좋아 죽을 것 같다. 좋아 죽을 것 같은 냄새는 이 세상에서 보통 음식 냄새다. 그냥 먹어도 맛있다. 그냥, 술도 밥도 뭣도 없이 그저 계란 부침개만 뜯어먹는 맛이 있다.


다른 날에는 싸구려 와인과 함께 와사비를 죽죽 뿌려가며 먹는다. 이것도 참 맛있다. 와사비는 늘 느끼는 거지만 뜨거운 음식에 더 잘 어울린다. 계란만으로 부침개를 만들어 먹어도 맛있고 밀가루로 약간 섞어서 같이 먹어도 맛있다. 계란 부침개는 그렇다. 그래서 먹고 있으면 조금은 일상에서 벗어난다. 만드는 동안 이상한 미트로프의 음악도 듣고(미트로프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일탈인 것이다. 이상한 미트로프 씨) 싸구려 와인 같은 술도 곁들여서 먹으니까. 냠냠


https://youtu.be/9X_ViIPA-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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