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딱 이 맘 때였다. 바닷가에 본격적인 무더위가 덮치기 전, 여름이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할 무렵 조카는 처음으로 바다라는 것에 눈을 떴다. 더 어렸을 때에는 여름의 바다에서 노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어느 날 문득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바다에 발을 담그고 물을 뿌리며 바다에서 노는 것이 즐겁다고 느끼게 된다. 인생의 완성은 대체로 어느 날 문득 이루어진다.


조카가 삼촌에게 놀러 와서 바다에 나오면 전망이 괜찮은 카페테라스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책을 본다. 밑그림을 조카가 그리면 나는 문어라든가, 물고기 라든가, 색종이로 그런 것들을 만들어서 물고기 머리에 조카의 얼굴이나 조카 엄마, 아빠의 얼굴을 붙여서 그걸 조카가 그린 바다의 밑그림에 붙인다. 어린이가 으레 그렇듯이 상상력이 풍부해서 조카가 그린 바다의 모습은 온 우주의 모습이다. 온통 밝을 것만 같지만 우울한 모습도 있다. 그래서 이건?라고 물어보면 그 작은 물고기는 버려진 물고기라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창 인형을 좋아할 때 베랭구어 실리콘 인형을 비싸게 주고 사서 선물로 줬다. 배랭구어 인형은 꼭 사람 같아서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데 조카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전통시장의 완구점에서 사준 인형을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이후에 더 예쁘고, 더 비싸고, 더 좋은 인형이 있어도 조카의 친구는 시장통에서 산 그 인형이었다. 조카는 한 때 집에서 할 수 있는 볼링 완구를 좋아해서 그걸 사준적이 있었다. 그냥 볼링은 재미없을 것 같아서 볼링핀이 동물로 이루어진 볼링 세트를 사주었다. 기린도 있고, 하마도 있고, 사자도 있고. 하지만 몇 번 세우고 던지더니 울면서 안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세워 놓은 동물을 자기 손으로 넘어트려 아프게 하니 이젠 이런 거 하기 싫다는 것이다. 정말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 같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삼촌이 있는 바닷가에 놀러 오면 꼬꼬마 때 하던 것에서 벗어나서 주로 책을 읽었다. 나는 나대로 조카는 조카대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2학년이 되었을 때 조카는 자신이 직접 적은 소설이라며 나에게 보여주었다. 제목은 ‘안녕’이다. 주인공 여자아이는 행복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안녕, 또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인사를 받는 사람들의 풍경을 묘사해 놓은 이야기다.


 여자아이가 인사를 하고 빵 파는 아저씨가 손님이 많아서 들은 건지 안 들은 건지 잘 몰라도 여자아이는 만족한다. 그런 식으로 ‘안녕’이라는 인사 한 마디를 통해 여자아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다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다가 여자아이는 동굴에게도 안녕하고 인사를 한다. 동굴은 여자아이의 목소리로 안녕, 하며 다시 인사를 한다. 메아리를 이런 식으로 표현을 했다. 인사하기를 너무 좋아하는 여자아이는 괴물을 만나도 안녕, 하고 인사를 한 후 괴물에게 잡혀간 남자아이를 구하러 간다.

 

그해 여름, 조카는 삼촌에게 이렇게 해맑은 모습으로 뛰어왔다. 세상의 어린것들은 온통 예쁘기만 하다. 나에게 이런 시기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예쁨으로만 무장했던 그해 여름.

 

어제 조깅을 하다가 동네 공원에서 마스크를 쓰고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놀고 있는 아이들을 봤다. 아이들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적극적이고 진지하다. 하지만 그 옆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인상을 쓰며 담배를 피우는 어른이 있다. 영감님이다. 영감님도 아이들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 사진은 역광이라 원본에는 조카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급작스럽게 하하하 웃으며 달려오는 바람에 그때 아이폰3GS로 얼른 찍은 사진이다. 나중에 후보정으로 얼굴의 어둡기를 좀 거둬냈다. 그랬더니 저렇게도 환하고 밝은 모습으로 달려왔다. 이 사진은 크게 출력을 해서 액자에 집어넣어서 조카의 할머니에게, 조카의 엄마에게, 또 크고 작게 인화를 해서 여기저기 붙여놨다. 집에 들어갔을 때 눈에 바로 들어오는 모습이 이런 모습이면 꽤 힘이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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