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안 통하는 한국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이 통하는 외국사람도 있다. 요즘은 코로나 덕분에 일을 마치면 바로 귀가하지만 집에서 그저 잠만 잤던 나는 코로나 그 이전에는 일을 마치고 조깅을 하고 난 후에는 집 근처의 백색소음이 가득한 곳에서 책을 좀 읽거나 쓰고 싶은 글을 조금 쓰다가 들어갔다. 카페보다는 주로 맥주 한 잔을 하면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러던 중에 그날이 오픈인 퍼브가 있었다. 집 근처이고 분위기도 좋아서 그대로 들어갔다. 아뿔싸 그런데 주인이 외국인이 있었다. 내가 주로 마시는 맥주는 칼스버그인데 칼스버그가 없어서 기네스를 마셨다. 오오 근데 기네스의 맛이 뭐랄까 편의점에서 캔으로 파는 기네스의 맛보다 좋았다. 아주 진하고 깊은 맛이 났다.


나는 회귀성이 강해서 한 번 갔던 곳을 줄곧 찾아가는 경향이 있다. 일단 한 번 발을 딛게 되면 그 옆에 더 나은 곳이 생겨도, 더 괜찮은 뷰가 있는 곳이 나타나도 쉽게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도 늘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에도 늘 가던 비디오 가게가 있었다. 아주 작은 곳으로 동네에 처음 생긴 곳이었다. 하지만 얼마 뒤에 그 옆에 아주 큰 비디오 가게가 생겼다. 모두가 다 그곳으로 갔지만 나는 그 좁아터진 곳으로 가서 비디오를 빌려 봤다. 주인아저씨와 오래되었기에 가서 비디오 제목을 말하면 바로 탁 찾아 주었다.


그래서 일 년 정도 뒤에 친구와 함께 내가 늘 가는 작은 비디오 가게에 같이 갔다. 친구도 간 김에 거기서 비디오를 빌리고 나도 빌렸는데 나는 VIP로 등록이 되어 있어서 그 날은 무료로 빌릴 수 있었다.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정말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학창 시절에는 늘 가던 레코드 가게만 가게 되었다. 노래가 파일로 존재하기 전에 거대한 백화점 레코드 점이나 대형 마트 안의 레코드 점도 좋았지만 늘 가던 곳의 어떤 그런 분위기가 있다. 그 분위기는 나를 꼭 안아준다. 서점도 그랬다.


일을 마치면 나는 그 바로 가서 기네스를 한 잔 주문하고 그다음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주인은 웨일스 출신의 아저씨로 이름은 좐(존)이었다. 당연히 매일 가니 매일 인사를 하고 매일 맥주를 마시며 매일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조금씩 주고받았다. 한 달 정도 뒤에 좐 아저씨는 나에게 “너 때문인지 여기 오는 손님들이 혼자서 와서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며 보라고 하는 것이다.


집 근처에는 굴지의 제조업 회사가 있고 그 회사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주 많다. 아파트 근처에는 외국인들이 사는 사택과 아파트가 많아서 동네에는 외국인 반, 한국인 반 정도의 인구비율을 보인다. 다른 퍼브에 비해서 좐 아저씨의 퍼브에 가면 90%가 외국인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통 아메리칸이나 잉글랜드는 없다. 대체로 러시아, 체코, 아프리카의 외국인들이 많다. 온 가족이 함께 이곳에 온 외국인은 회사에서 위치가 좀 되는 기술직의 사람이고, 혼자서 온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동북, 동남아시아 인들은 없다. 그들은 대체로 저 끝으로 가면 방파제가 나오는데 거기의 어선에서 모두 일을 한다. 동남아시아인들의 재미있는 일화는 대체로 더운 나라에서 와서 그런지 한 5월 달 정도 되면 아, 이제는 내복을 좀 벗지, 하며 그때서야 내복을 벗어던진다. 그들과 낚시를 하면 꽤 재미있지만 이 일은 다음에 하기로 하자.


좐 아저씨의 퍼브는 밤 9시가 되면 이전에 가능하던 요리는 나오지 않는다. 음식은 일절 주문받지 않는다. 오로지 술만 판다. 아주 좋은 현상이다. 누군가 와서 배가 고프다며 음식 먹기를 바란다고 해도 넉살 좋게 생긴 얼굴로 “오우, 이 시간 이후로 주방은 모두 퇴근이에요”라고 돌려보낸다. 미련도 갖지 않는다. 그래서 퍼브 안으로 주방의 음식 냄새가 나지 않는다.


좐 아저씨 퍼브의 재미있는 점은 주말이 되면, 금요일이 되면 외국인 가족들도 모두 퍼브로 와서 주말을 즐긴다. 좐의 퍼브에는 당구대도 있는데 모두가 한 손에 와인 한 잔씩 들고 당구대 주위에 서서 흐르는 음악에 따라 몸을 흔든다. 한 손에 와인을 들고 몸을 흔드는 외국인들은 기술자들의 가족들로 주로 아내나 딸들이다. 이브닝드레스 비슷한 옷을 갖춰 입고 금요일에는 좐의 퍼브에서 밤을 즐긴다.


그런 시간, 그런 날, 좐의 퍼브에 있게 되면 모두와 친해져서 같이 떠들고 마시며 논다. 한 번은 경찰이 떴다. 퍼브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오아시스의 ‘스탠 바이 미’를 따라 열창을 했기에 옆집에서 주민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시끄럽게 해서 경찰이 온 건 예전 고등학교 때 친구 집에서 모두 모여서 소주를 마시며 옛날 노래를 부르다 신고당해서 경찰이 오고서는 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좐 아저씨와 조금 더 친하게 된 계기는 나오는 음악 때문이었다. 좐 아저씨는 브루스 스프링스턴을 좋아했는데 그의 노래와, 그리고 하루키라는 소설가가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며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영국 음악의 계보 같은 것들을 죽 이야기해 주었다. 비틀스를 시작으로 해서 버브,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뮤즈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죽 했다. 글래스톤베리 축제는 음악의 꽃이라는 것과 함께, 아일랜드 그룹 크렌베리스의 ‘좀비’라는 노래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을 때를 꼬집는 노래라는 것도 주절주절 이야기를 해버렸다.


좐 아저씨는 웨일스 출신으로 영국을 아주 싫어했다. 그래서 크렌베리스의 노래 '좀비'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더욱 좐 아저씨는 나의 이야기에 심취했다. 어쩐지 그 뒤로부터 인가 기네스를 주문해서 반 정도 마시고 나면 반 잔 정도 남은 내 잔에 에이펙이라는 맥주를 섞어 주었다. 근데 그게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좐 아저씨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노트북으로 나는 자신의 가족에게 인사도 시켜주었다. 노트북으로 영상통화를 하는 가족은 저 이역만리에 떨어져 있는 전 부인과 딸들이었고 여기 퍼브에서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아내(한국인)와 아들이 같이 있다. 노트북으로 영상통화를 하는데 지금의 아내가 반갑게 예전의 아내에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마치 친 자매처럼 이야기를 했다. 그런 문화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좐 아저씨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같이 지내고 있어서 퍼브에도 종종 놀러 왔다. 좐 아저씨에게 소개를 받아서 같이 사진도 찍고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좐 아저씨와 아들을 보면 홍콩인들처럼 담배를 같이 피운다. 야외에 앉아서 같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으며 자연스럽게 보인다. 해운대에 가면 대만인지 홍콩의 한 가족이-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들이 다 같이 테이블에 앉아서 담배를 피울 사람은 그 자리에서 피운다.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니 담배를 피우고 카악 퉷 하면서 침이나 가래를 뱉는 행위는 없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면서 계절도 바뀌었다. 여름 동안 떠들썩하게 주말만 되면 축제 분위기가 매주 이어졌다. 별 것 아닌 것에도 모두가 다 같이 웃고 즐겁게 시간에 충실했다. 그들은 주말은 칼 같이 지켰다. 금, 토, 일에는 그저 쉬는 것이다. 주말에 일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회사에 다니는 외국인들의 가족들도 주말 저녁에는 모두가 나와서 와인이나 맥주잔을 들고 주말을 즐긴다. 또 크리스마스가 끼는 주말에는 보통 2주 정도가 휴가를 받는다. 쓰지 않고 모아둔 휴가까지 이어 붙이면 거의 한 달 가까이 휴가를 보낼 수 있다. 우리와는 아주 다르다. 그 기간에 가족을 보러 외국의 자신들의 집으로 가는 외국인들이 있고, 아예 2주 동안 느긋하게 이 곳 바닷가를 어슬렁 거리며 저녁에는 퍼브에 나와 간단한 조리음식과 맥주를 즐기는 외국인들도 있다.


좐 아저씨의 퍼브에는 일단 외국인들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굴지의 제조업 한국인 회사원들도 퇴근 후에 해물탕에 소주를 한 잔 걸리고 2차로 들리기도 한다. 한 번은 내가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며 책을 읽고 있었다. 아마 그때 읽었던 책이 이충걸의 ‘완전히 불완전한’이었다. 이충걸 하면 잡지 지큐의 편집장으로 그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이 된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런 작가가 몇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황경신이라든가 씨네 21의 김혜리 기자의 글이 그렇다.


이충걸의 그 책은 첫 소설이라 아주 푹 빠져서 보고 있었는데 바의 옆에 앉아서 술이 거하게 된 회사원(굴지의 대기업 회사원들이 입는 회사 점퍼를 그들은 늘 입고 있다) 두 명중 한 명이 내쪽으로 쓱 오는 것이다. 그러더니 나의 얼굴을 아래위로 조금 훑어보더니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아 유 제페니즈?"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보여줬다. 눈을 한 일자로 가늘게 뜨고 한 참을 보더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일행에게 그런 말을 했다. “야야, 저 일본인 한국 책 읽고 있더라, 제길.”


그렇게 좐 아저씨의 바를 들락거리다가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을로 접어들었다. 나는 늘 비슷한 모습으로, 그러니까 조깅을 하면서 입고 있던 그런 체육복 차림으로 가방을 들고 아이패드나 책을 꺼내서 바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한 번 앉았던 자리에 늘 앉게 된다. 하루는 좌 아저씨가 새벽 2시까지 하는 장사를 자정에 접었다.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손님들에게 미안하다며 자정에 다 내보내고 셔터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둘이서 술을 마시자는 것이다.


좐 아저씨는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 한국인 아내 빼고는 그렇게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는데 꽤나 말이 통한다는 것이다. 좐 아저씨는 숨겨둔 위스키를 들고 와서 맥주와 함께 어떤 식으로 섞어 마시면 맛있는지 보여주었다. 그래서 둘이서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셨다. 좐 아저씨 퍼브의 맥주가 왜 맛있냐 하면은 편의점에 들어가는 맥주와는 다른 기법의 기네스와 에이팩 종류의 맥주를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게 중에는 본토에서 가져오는 맥주도 있었다. 이런 부분은 나는 잘 모르는데 나의 사촌동생이 한 번은 집에 놀러를 왔다. 사촌동생 가족이 온 것이다. 이모의 가족이다. 나의 어머니 동생과 그의 남편인 이모부, 그리고 딸인 사촌동생과 가의 남편이 온 것이다. 사촌동생과 남편은 맥주 킬러로 포틀랜드에 살다가 와서 맥주에 관해서는 꽤나 맛을 아는 사람들인데 좐 아저씨의 퍼브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여기 맥주는 보통 다른 곳의 맥주와 확실히 다르다고. 나는 다 먹고 난 후 술값을 계산하지 않고 한 잔씩 시킬 때마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계산을 했는데 사촌동생 내외는 그것도 꽤나 재미있어했다.


아무튼 좐 아저씨와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며 둘 다 술이 많이 취했다. 좐 아저씨는 웨일스 해군 출신으로 그 약자를 퍼브의 상호명으로 했다. 덩치도 좋고 키도 엄청 커서 특수훈련을 받으며 군생활을 한 탓에 그다지 겁이 나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와는 정 반대의 나와 알게 되고 매일 책을 조금 읽고 하는 모습이 새로웠던 것이다. 물론 이야기를 술술 하며 대화가 통한 건 아니다. 내가 영어가 안 되니 대화 사이에는 이런저런 몸짓과 폰의 도움도 받고 술이 정신을 때린 다음이라 서로 다른 말을 해도 그저 알아듣게 된다.


좐 아저씨와는 언어는 안 통하지만 말은 잘 통했다. 좐 아저씨를 비롯해서 나의 친구와 결혼을 한 영국인 죠나 나이를 묻지 않는다. 그러니까 호구조사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아버지 뭐 하시노, 같은 질문은 전혀 없다. 그저 지금 하는 대화에 충실하고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낸다. 습관적으로 상대방의 나이, 상대방의 어머니, 상대방의 동생의 나이는 뭐야?라고 묻는 한국인들은 마치 그렇게 모든 것이 생각하는 틀에 끼워 맞춰져야 상대방이 대화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하는 인상을 풍긴다. 언어는 통하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 한국 사람도 많다. 어떻든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사람들은 전부 제각각이다.  


그러다가 굴지의 조선업 회사는 타격을 맞게 되었다. 그러면서 시나브로 외국인들이 각자 자기의 나라로 돌아갔다. 결국 그 여파에 좐 아저씨의 퍼브도 문을 닫고 말았다. 어디서든 잘 지내시겠지.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노래를 들으며. 



차례대로

셔터를 내리고 4시까지 마실 때

좐 아저씨도 술이 됐음

바닷가 퍼브의 여름은 늘 이렇게 북적인다

퍼브에서 책 읽는 사람이 늘었다

금요일 저녁에는 늘 파티다

문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이 즐비하게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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