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스트 레시피’의 초반에 추억의 오므라이스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 맛에 죽음을 앞둔 부자 노인은 감격하고 만다. 예전에도 EXID의 하니의 이야기를 하면서 추억에 관한 음식을 다뤘다. 우리가 흔히 혀로 느끼는 맛이라는 건 시간이 지나면 혀의 영역에서 벗어나 뇌의 여러 구간으로 흘러들어 가 버리고 만다.


요리사 박찬일의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를 보면 시칠리아에서 송아지 내장 햄버거를 먹는 일화가 있다. 주인과 대화를 나누며 왜 시칠리아에 송아지 내장 햄버거가 있냐고 물으니 “음, 시칠리아는 가난했으니까, 고기는 먹을 수 없고, 값이 싼 내장으로 햄버거를 만들 수밖에. 그게 시칠리아의 음식이지”. 등심 같은 구잇감은 부자에게 내어주고, 내장으로 곰탕을 끓였던 우리 민중들의 음식과 흡사한 것이 시칠리아의 내장 햄버거였던 것이다.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의 저자 니시카와 오사무는 우리나라 낙지에 대한 추억도 있다. 젓가락으로 집었더니 접시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빨판이 즉시 뺨 안쪽에 달라붙는다. 이가 닿을 수 있도록 뺨을 일그러뜨려 힘주어 씹는다. 씹을 때의 촉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쾌하다. 접시 위에서는 짧게 토막이 난 낙지의 다리가 한 마리 긴 애벌레처럼 여전히 꿈틀 거린다. 블랙 유머 같은 느낌이 든다. 가나지와에서 먹어본 적이 있지만 그보다 몇 배 더 유머를 느끼게 하는 음식이다. 죽어도 다리에 남아 있는 신경의 꿈틀거림으로 생존을 항변하는 ‘죽은 낙지’의 블랙유머다. 


맛이라는 건 역사와 추억으로 기억된다. 음식 속에는 음식이 단단하게 가지고 있는 시간과 시간이 지니는 역사와 그 역사를 이루는 개개인의 추억이 내밀하게 쌓여 있다.


누구에게나 추억의 음식이 있으며 그 추억의 음식은 한 두 개가 아닐 것이다. 누구와 먹었나, 언제 먹었나, 어디서 먹었나, 에 따라 그때그때 먹은 음식은 강한 기억이 되어 추억으로 소장된다. 전어에 대한 추억이 있다. 요즘에는 찾아 먹는 음식이 없지만 예전에는 꽤나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서 먹기도 한 적이 있었다. 짱뚱어탕이 너무 먹어 보고 싶은 나머지 전라도로 여행을 가기도 했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짱뚱어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일이었다.


나는 전어를 무척 좋아했었다. 전어회를 좋아했는데 친구들이 그런 나를 전어를 국수처럼 먹는 놈이라고 불렀다. 전어회를 씹는 맛이 좋았다. 씹고 있으면 고소한 맛이 퍼지는데 그 맛에 빠져 들었다. 그래서 전어회를 먹을 때는 초장에 찍어 먹는 게 아니라 앞접시에 이 만큼 담아서 그 위에 된장을 조금 바른 다음 정말 국수처럼 후루룩 먹었다.


전어를 너무 먹으니까 보너스를 탄 친구 놈이 한 번은 나에게 너 먹고 싶은 만큼 전어회를 사주마, 하며 가을 전어를 사주었다. 그랬는데 내가 네 접시를 먹은 것이다. 가장 비쌀 때 가장 많이 먹었다. 적당히 기름이 올라와서 참 맛있었다. 친구 놈은 네가 먹으면 뭘 얼마나 먹겠냐며 먹을 만큼 먹으랬는데 한 접시 주문해서 먹고 또 주문하고 또 주문할 때 친구 놈의 낯빛이 변하더니 한 접시 더 주문을 하니까 무표정이 되었다.


그 횟집은 우리가 자주 가는 집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는 횟집으로 참 자주 갔었다. 메인 회가 나오기 전에 여러 안주거리가 많이 나오는데 나는 그 집의 미역국을 좋아해서 거기에 밥을 말아서 자주 먹곤 했다. 사장님을 우리는 형님이라 불렀고, 그러다 보니 손님이 뜸 할 때에는 같이 앉아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곤 했다. 재미는 없는 사람이지만 참 순하고 선한 사람이었다. 


단골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회를 정말 많이 챙겨 주었다. 전어를 제외하고는 회에 대한 욕심이 그렇게 없어서 밑반찬으로 나오는 고동을 나는 주로 먹었다. 고동은 인기가 없어서 내가 다 먹었는데 언젠가부터는 내가 쪽쪽 빨아먹는 걸 보더니 나도 먹어보자며 친구 놈들이 먹기 시작하더니 한 번 테이블에 앉으면 고동을 보통 다섯 접시 정도 먹었다. 주인 형님은 얼마든지 있으니, 다른 손님들은 고동은 쳐다보지도 않으니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그때가 한창 아버지가 투병할 때였다. 병원에서 병간호를 하느라 자주 가던 그 횟집에 나만 가지 못하게 되었다. 낮에는 어머니가 병실을 지켰고 밤에는 일 마치고 달려가서 병실의 간이침대에서 잠이 들다가 아침에 어머니가 병원에 오면 나는 일을 하러 나왔다. 그 소식이 친구들을 통해서 횟집 형님 내외의 귀에 들어갔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횟집 주인 형님이었다.


한 번 오라고 하기에 일하는 도중에 시간을 내서 들렀다. 그랬더니 우리가 늘 앉는 큰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전어회와 고동과 미역국과 밥이 있었다. 병간호하려면 든든하게 먹고 가라며 밥을 차려 주었다. 그리고 아무 말하지 않고 자리를 피해 주었다. 고동을 몇 개 쪽쪽 빨고, 미역국에 밥을 말아 호로록 먹고 전어회를 된장에 찍어 먹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모든 일들이 마무리가 되고 일상으로 돌아와 그 횟집으로 가보니 주인이 바뀌었다. 우리에게 연락도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바닷가에서 제대로 횟집을 할 거라고 종종 말하곤 했었는데 그렇게 되었다.  


며칠 전에 옆 집에서 전어회무침을 먹으라고 주었다. 보통 아파트 옆집들에게 사진으로 액자나 시계나 뭐든 만들어줘서 먹을 걸 종종 얻어먹는다. 미안할 정도로 나눠준다. 선짓국을 하면 도대체 이렇게 한 냄비를 주면 그 집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게다가 옆 집은 한식 조리사 자격증이 있어서 유부초밥, 추어탕 등 못하는 음식이 없는데 일주일에 한 번은 얻어먹는다.


그래서 전어회무침도 얻어먹었다. 전어회를 먹으면 항시 그때가 떠오른다. 그 횟집의 그 주인 형님 내외. 너무나 다정하고 순했던, 장사와는 거리가 참 먼 사람들인데 묵묵히 회를 썰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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