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야기라는 게 맞겠다. 너바나는 정말 기존의 음악을 박살 내 버렸다. 너바나가 등장 함으로 10년 가까이 굳건하게 지키고 있던 마이클 잭슨의 아성이 무너졌다. 마이클의 엄청난 무대가 팬과 스타의 경계를 확실히 했고 스타의 의상은 일반인들이 우러러봐야만 했던, 굉장한 군무와 고출력 음장 기기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음악이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었다. 그저 기타 하나 들고 마이클 잭슨을 따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커트 코베인이 나타나 이 모든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그것을 대체 음악, 얼터너티브라고 불렀다. 기성세대 기득층의 음악을 그대로 해체시켜 버린 밴드가 너바나가 아닐까 싶다.


커트 코베인은 정말 불운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그것도 짧게, 고뇌와 통증을 극심하게 앓다가 살다 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커트의 어린 시절은 아주 암담했다. 엄마가 19살에 커트를 낳게 된다. 커트 코베인은 9살에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이혼을 한다. 9살짜리 커트는 그때부터 친척 집을 돌아다니며 생활하게 된다. 커트의 곁을 지켜 줬던 건 기타 뿐이었다. 검색하면 많이 나오니 궁금하면 찾아보기 바람.


87년 머리가 긴 커트 코베인과 베이스의 크리스 노보셀릭이 우리도 이제 밴드를, 하면서 너바나가 만들어졌는데 커트 코베인은 밴드 이름을 당시 약이나, 본드, 권총, 박살 같은 저속하고 강한 닉 네임 말고 무정부주의적인 아름답고 세속적이지 않는 닉 네임으로 하고 싶어서 ‘열반’이라는 의미가 있는 너바나로 하게 된다. 열반은 번뇌와 고뇌가 소멸한 상태를 말한다.


88년 서브 팝이라는 음반회사에서 첫 싱글을 발매하게 된다. 브리치라는 노래가 예상외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그러면서 언더에서 너바나는 확고한 자신들의 자리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실력에 비해서 서브 팝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느낀 커트와 크리스는 소닉 유스(역시 대단한 밴드죠)의 권유로 개팬레코드사와 정식 계약을 맺게 된다. 늘 하는 말이지만 음악은 '예술'이라도 음반은 '산업'이기에 음반사를 잘 만나야 했다. 비치 보이스도 비틀스도 본 조비도 다 그렇게 개고생을 해서 음반사를 제대로 찾았기에 그들의 음악이 세계에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음반사를 잘못 만나면 그대로 쫑 나기 십상이다. 요컨대 슈가맨의 로드리게스가 그렇다.


부치 빅이라는 대단한 프로듀서와 작업을 하면서 내놓은 앨범이 바로 ‘네버마인드’였다.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이 들어있는 악마의 앨범. 개팬레코드사는 소닉 유스가 내는 앨범의 25만 장 정도의 수준으로 너바나의 네버마인드 앨범도 그 정도 팔릴 것이라 예측했다. 처음에는 개팬의 예상대로 빌보드 144위 정도로 출발했는데 처음 찍어낸 5만 장이 순삭 해버리고 이 악마의 노래,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이 엠티비에서 매일매일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너바나의 그 흐느적거리는 강한, 미친 악마의 노래가 계속 남으면서 인기가 폭발적이 된다. 그러다가 92년도에 500만 장이 팔려 나가게 된다.


그해 커트는 코트니 러브와 결혼을 하게 된다. 코트니 러브가 누구인가. 홀의 리드 보컬이다. 홀은 ‘셀러브리티 스킨’으로 대단한 인가를 누린다. 일단 한 번 듣고 오자. https://youtu.be/O3dWBLoU--E


자 듣고 왔다. 이렇게 강력하고 멋지고 섹시하기가 힘든데 그 험한 길을 코트니 러브는 걷고 있었다. 아마도 그 모습에 커트 코베인이 반했지 않았을까. 코트니 러브는 홀에서 기타를 울러 매고 헝클어진 머리와 붉은 립스틱, 모호한 눈으로 떠돌이 같은 이미지였다. 제니스 조플린처럼 말이다. 거의 짧은 치마의 원피스를 입고 기타를 매고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며 노래를 불렀는데 팬티가 보이든 말든 이었다. 코트니 러브는 넘치는 끼를 어쩌지 못해서 배우로도 활동을 했다.


커트는 그런 코트니와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아서 깊은 행복감에 젖는 듯 보인다. 그리고 커트는 93년에 인 유트로 앨범을 발매하는데 또 정상에 오른다. 커트는 네버마인드로 너무 유명해져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우울증과 정서적인 불안으로 약을 하고 또 약을 하고 술을 마시고 약을 했다. 유 인트로 앨범은 그런 커트의 망가진 정신세계를 그대로 드러낸 앨범이었다.


이후 미국 투어를 다니며 엠티비에 자주 나오게 되었다. 엠티비는 미국에서 톱클래스, 주류 음악을 하는 음악인들이 나오는 것인데 커트는 자신이 그 속에 있다는 것에 대한 모멸감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은 비주류로 기성세대의 삐뚤어진 주류를 실컷 밟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물질을 쫓는 인간들을 짓누르는 음악을 했다. 그런데 그런 주류가 비주류인 자신의 음악에 미치도록 열광하는 것에서 말할 수 없는 극도의 모멸감을 느낀다. 결국 약을 하다 헤로인에 빠져들게 되고 세계 투어 중 로마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고 만다. 이후 헤로인을 치료하는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거부하고 탈출해 시애틀의 집으로 와서 94년 4월 8일 자신의 집에서 권총 자살로 시체로 발견되고 만다. 이 세상에 불운한 죽음이 있다면 커트 코베인은 5위 안에 들 것이다. 


아직까지 커트의 죽음을 두고 미스터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권총에는 지문이 없고 유서의 필체가 커트의 것과 다르고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의문이 사람들에게 돌기 시작했고 그 배후에는 아내인 코트니 러브가 있다는 설이 있다. 커트 코베인은 왜 주류에 들어가기를 극심하게 싫어했을까. 60년대부터 불던 부모 세대에게서 저항을 느낀 이들이 일명 부모 세대, 전쟁세대에게 도움을 받기를 거절하면서 창고 같은 데서 지내면서 자기들의 생활은 자기들이 알아서 책임지겠다며 나오는 세대가 생겼다. 그것이 뉴 제너레이션 세대인데 그중에는 스티브 잡스도 그랬다.


커트 코베인 역시 친척 집을 떠돌면서 물질만을 쫓는 부모 세대들에게서 미래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창고 같은 곳에서 자기 마음대로, 그러니까 이전 세대를 비판하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은 번뇌와 고뇌가 소멸한 상태로 가는 것이다.


부모 세대처럼 살면 안 된다, 이전 세대, 물질을 찬양하고 쫓는 세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자신의 음악을 부모 세대가 열광하는 것에 괴리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한다.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 정신적으로 받은 손상은 쉽게 치유되지 못한다. 경멸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찬양하는 것에서 오는 모멸감은 대단했다. 오로지 헤로인 만이 그를 ‘무’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정말 커트 코베인은 긴 불행의 시간 속에서 아주 잠시, 잠시 행복을 맛보았던 것 같다.


https://youtu.be/hTWKbfoik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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