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미는 냉면처럼 겨울에 먹으면 더 맛있다. 별미다. 이상하지만 동치미는 겨울에 찾게 된다. 다른 계절에는 전혀 찾지 않게 되다가 겨울만 되면 보고 싶은 사람처럼 찾는다. 겨울이 되면 푸른 하늘의 ‘겨울바다’를 찾아서 듣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동치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팥죽이다. 단팥죽이 아니라 그냥 팥죽. 역전시장에 가면 팥죽 거리가 있다. 죽 붙어있는 팥죽 파는 가게는 온전한 가게라는 형태보다 그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고 맞은편에서 할머니가 팥죽을 퍼 담아서 내어 주는 형식이다. 전통시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팥죽은 거기에 앉아서 먹으면 맛있지만 동치미가 딸려 나오지 않기 때문에 포장을 해서 집에서 이렇게 동치미와 함께 먹는다. 이 정도의 동치미를 통에 담으면 한 번에 다 먹어 치운다. 동치미는 온전히 어른의 음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당이 있던 어린 시절에는 화단 한 편에 독을 묻고 거기에 동치미를 담갔다. 그리고 겨울에 그것을 꺼내서 먹었다는 기억은 있지만 동치미를 맛있게 먹은 기억은 없다. 또 그때는 무가 큼지막해서 젓가락으로 꼽아서 먹거나 해야 했는데 영 손이 가지 않았다.

동치미에 맛을 들인 건 대학교 때 자주 가는 닭갈비 집이 있었다. 거기 이모는 늘 닭갈비를 주문하면 동치미를 내주었는데 닭갈비보다 더 맛있었다. 시원하고 새콤하면서 와삭하고 씹는 무는 너무나 맛있었다. 일주일에 몇 번씩 가다 보니 주인 이모와 친하게 되었다. 동치미를 여러 번 달라고 해도 싫은 내색 한 번 내지 않았다. 나는 닭갈비보다 동치미가 좋아서 동치미에 밥을 말아먹었다. 그러면 주인 이모는 나를 위해 동치미를 한 그릇 더 떠주고 밥도 더 주었다. 닭갈비 집은 한 건물의 9층에 자리했는데 9층이 닭갈비 타운이었다. 그 안에는 닭갈비 집이 10집이 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일주일에 몇 번씩 가니 그 집만 늘 북적북적거렸다. 테이블이 고작 4개밖에 안되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사람들이 많으니 조금씩 소문이 퍼져 그 집이 장사가 제일 잘 되었다. 그 덕분에 그 닭갈비만 돈을 왕창 벌어서 입지 좋은 곳으로 옮겨서 크게 닭갈비 집을 열었다. 아마도 동치미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매콤한 닭갈비의 맛을 살며시 눌러 주는 건 동치미다.


동치미는 단체 생활하는 곳에서는 잘 먹을 수 없다. 군대 같은 곳에서는 동치미를 먹을 수 없다. 오로지 집에서 조금씩 담근 동치미를 겨울에 맛보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야만 맛에 눈을 뜨는 음식 중에 하나다. 동치미는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 김치와도 비슷하다. 그래서 동치미의 다른 맛을 맛보는 것 역시 좋다. 나는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서 그런지 죽 전문점에서 딸려 나오는 조금은 달달한 동치미의 맛도 좋다. 그래서 왕왕 가는 죽 전문점에서는 죽을 구입할 때 동치미 국물만 따로 몇천 원어치씩 사 먹기도 했다. 


겨울의 동치미의 맛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건 겨울의 팥죽이다.  둘 다 겨울에 먹으면 더 맛이 좋은데 겨울에 둘 다 먹으니 아주 맛있는 것이다. 팥죽을 한 숟가락 떠먹고 동치미를 떠먹는다. 시원하고 새콤한 국물이 꿀꺽 넘어간다. 그리고 무를 씹으면 동치미 국물을 가득 물고 있어서 무를 씹는 맛이 좋다. 팥죽을 입 안 가득 넣고 오물오물 먹고 동치미를 한 국자 떠먹는다. 아흐. 정말 어르신들이 목욕탕에서 탕에 들어갈 때 나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동치미는 쌉싸름한 와인과 같이 먹어도 맛있다. 동치미의 가장 별미는 국수 소면을 삶아서 동치미에 넣어서 후루룩 먹는 것이다. 곰돌이 푸우가 매일 행복할 수는 없어도 행복한 일은 매일 일어난다고 했는데 동치미에 국수 소면을 말아서 먹는 동안은 행복하다. 동치미는 내 외할머니를 늘 소환시킨다. 주글주글한 손으로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던 내 외할머니. 


내 외할머니는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외할머니와 중학생이었던 내가 한 번은 둘이서 식당에 갔다. 나는 갈비탕을 시키고 외할머니는 냉면인가, 동치미국수인가를 시켰다. 나는 그게 너무 맛있게 보여서 조금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밥그릇에 국수를 담았다. 국물도 조금 부었다. 그리고 담은 밥그릇을 자기 앞으로 당기고 큰 냉면그릇은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동치미를 와삭와삭 씹고 있으면 외할머니도 보고 싶고 생각이 난다. 동치미는 그런 메타포를 지니고 있다. 


나는 한 동안 겨울에는 동치미를 조금 큰 텀블러에 담아서 들고 다녔다. 모두가 텀블러에 커피를 잠아서 마셨는데 나는 시원한 동치미를 담아서 마셨다. 그러다가 무도 먹고 싶어서 큰 보온병으로 바꾼 다음 동치미를 이만큼 담아서 하루 종일 홀짝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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