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를 거의 매일 먹는 나로서는 하루키의 두부 이야기는 흥미롭기만 하다. 하루키는 신주쿠 술집에 굉장히 맛있는 두부를 내놓는 집이 있는데, 처음 갔을 때 너무 맛이 좋아서 한꺼번에 네모나 먹고 말았다고 한다. 간장이나 양념 같은 것은 일체 치지 않고 그냥 새하얀, 매끈매끈한 걸 꿀꺽하고 먹어치우는 것이라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말하고 있다.
두부 하면 하루키다. 그는 갓 사 온 두부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하룻밤 지난 두부를 어떻게 먹느냐는 것이 제대로 된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귀찮으니까 지난 것이라도 먹자는 주의가, 방부제라든가 응고제 같은 것의 주입을 초래한다고 했다. 두부 장수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침에 된장국에 넣으라고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열심히 맛있는 두부를 만드는 건데, 모두들 아침에 빵을 먹는다든가, 슈퍼에서 파는 방부제가 들어 있는 좋지 않은 두부를 사 먹거나 하니까, 두부장수 쪽에서도 의욕이 떨어져 버리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두부를 만드는 우수한 두부 가게가 거리에서 한 집 한 집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고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그렇지만 공장 두부도 좋아한다. 손두부(어촌 시장의 손두부 집은 많이 사라졌는데 백화점에서 손두부를 만들어서 팔고 있다. 생각해보면 묘하다)를 먹을 때도 있고 공장 두부를 먹을 때도 있는데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공장 두부도 공장에서 갓 나온 두부를 먹으면 눈이 번쩍할 만큼 맛있다. 단지 전국 각지의 슈퍼와 편의점으로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처리를 하는 것이다.
두부는 인간이 잠들어 있는 바다에서 인간의 땅으로 온다. 맛있는 두부는 간장도 양념도 필요 없다. 갓 나온 두부는 두부 본연의 맛을 꽉 쥐고 있기 때문이다. 두부 역시 간수로 만들어진다. 간수가 중요하다. 간수를 맞추지 못하면 두부의 생명은 사라지고 만다. 두부는 두부 장수의 뒤틀어진 팔의 생명을 나눠 정당한 맛을 낸다. 오직 적요한 시간, 그제야 으스러지지 않고 두부는 근사한 언어를 지닌 채 인간의 곁으로 온다.
밥상 위에 두부가 사라진다는 건, 카메라에 의존하는 사진쟁이는 피사체로 사진을 꽉 채우고, 어설픈 그림쟁이는 여백을 두려워하고, 사색 없는 글쟁이는 수식어가 많은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