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의 한 재소자가 빨리 죽여 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렇게 형을 살 바에야 빨리 죽는 게 낫다, 왜 빨리 사형을 집행하지 않느냐, 내가 소녀를 죽인 건 맞지만 그땐 술과 약에 취해있었다, 너무 고통스럽다며 한 번에 죽여 달라는 남자가 있다
세상의 법이 바뀌어 소녀를 강간하고 죽이는 흉악범들에게는 새로운 집행이 도입되었다. 죽은 피의자의 가족이 보고 동의하는 가운데 고통스럽게 죽음으로 가는 형벌이다. 천천히, 하나씩, 합법적인 수술을 통해 신체의 한 부분을 절단해서 죽음으로 향하게 한다. 수감자가 원한다면 몇 년에 걸쳐 하나씩 신체의 한 부분씩 절단 된다
단순히 사형이나 무기징혁으로 흉악범의 죄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사형하라고! 그냥 죽이라고! 하지만 감독관은 당신의 고통을 줄이려고 이러는 것이다, 몇 번의 수술을 통해 당신의 사지가 절단되고 나면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용서해줄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수술대에 오른 윌리 빙엄.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피해자의 가족들. 죽은 소녀의 아버지의 ‘진행하세요’라는 말이 떨어지면 수술은 이루어지고 윌리 빙엄의 한쪽 팔이 절단된다. 그리고 윌리 빙엄은 학교를 돌아다니며 죄를 지으면 이렇게 된다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그때 까지만 해도 윌리 빙엄은 아직 얼굴에 독기 같은 것을 품고 있다
그리고 다음 수술에서 다리 한쪽과 남은 팔 한쪽을 절단하기를 피해자 가족은 요청했고 윌리 빙엄은 수술대에서 신체를 잃게 된다. 윌리 빙엄은 휠체어를 타고 문제아들이 있는 학교를 찾아다니며 범죄의 심각성과 형벌에 대한 공포를 말한다. 피해자의 가족은 분노가 가시지 않았는지 형벌 집행을 그만두지 않는다
이번의 수술에서는 신장과 폐를 적출하게 된다. 윌리 빙엄은 점점 고통스럽고 무서운 이 생활을 끝내기를 바라자면 5개월 이후 또 다시 수술이 잡힌다. 그리고 그 수술에서 코와 입술과 귀가 절단된다. 수술을 앞 둔 윌리 빙엄에게 찾아온 조사관은 이렇게 묻는다
고통스럽습니까,라고
윌리 빙엄의 경우라는 영화는 2015년에 나온 12분짜리 단편영화다. 이 영화는 근래에 일어나는 한국사회현상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윌리 빙엄은 이 처절하고 무서운 지옥이라는 지금이 끝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서 더 끔찍하고 무섭다. 이 형벌에 대해서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지만 형벌은 계속 집행된다
솜망방이 처벌, 강간살인, 미제사건, 작금의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고통스럽습니까?라는 말은 당신에게 고통을 받은 피해자도 고통스러웠다고 말하는 것과 동시에 피해자가 용서해 줄 것이니 고통이 끝날 것입니다,라는 의미도 있다. 흉악범의 사지절단을 지켜봐야만 했던 피해자의 가족들, 소녀의 어린 동생들 또한 죽을 때까지 트라우마로 남을 고통인 것이다
이 단편영화는 데미지가 굉장하다. 만약 내 가족이, 내 사랑하는 사람이 불이익을 당했는데, 괴롭힘을 당하다가 죽었는데 아무도, 그 누구도 들어주는 이가 없고 ‘근신‘라든가, ‘벌금’라는 고작의 처벌이 주어지면 어떨까. 생각을 불러들이는 짧지만 강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