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제목을 참 잘 지었다. 최근에 한국의 방송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나 ‘작지만 분명한 행복’ 같은 말로 많이 나오고 있다. 또는 ‘소확행’으로 여러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입에 담고 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먹는 방송을 한다. 그러고 보면 먹는 일이 사는 일 중에 가장 행복의 큰 요인이 되기도 한다. 부부관계에서 섹스보다 식사가 중요하게 되는 건, 나이가 들면 섹스는 안 하게 되지만 식사를 그만둘 수 없다. 둘 중에 하나가 죽을 때까지 매일매일 식사를 하는 게 부부관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루키 책 대부분이 제목이 좋은 것 같다. 물론 하루키가 제목을 짓는다. 소설의 제목도 명확하지 않으면서 추상적이라 마음에 든다. 듣고 바로 알아차리는 소설의 제목은 그러지 않는 제목에 비해 시시하다는 느낌이다. 에세이와 인문학 책과는 다른 소설이니까 좀 더 비틀어서 제목을 지어도 괜찮잖아,라고 하루키는 말하는 것 같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라는 에세이가 97년도에 한국에 출판이 되었는데 대부분의 내용은 86년도 전후의 이야기들이다. 그 속에는 86년도 보다 더 전의 이야기, 요컨대 하루키의 대학생 시절이라든가, ‘피터 캣’이라는 재즈 바를 경영 한 초기 이야기와 일상에서 하루키의 눈으로 주워 담은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 에세이는 삽화가 가득한데 하루키를 선 하나로 하루키처럼 표현한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솜씨다. 에세이를 읽는 재미를 더 해준다.


그중 ‘나는 쇠고기와 바다를 무척 좋아한다’라는 챕터가 있다. -바다라는 것은 역시 가까이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그 냄새를 맡으며 생활하지 않으면 진짜 좋은 점을 알 수 없는 게 아닐까? 쇼난이나 요코하마의 바다는 약간 지나치게 세련되어서, 그러한 ‘생활 감각으로서의 바다’가 타향에서 온 방문객에게는 완전히 전해지지 않는 구석이 있다.- 라는 글이 있고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 이유는 집 앞이 바다라서 출근을 하면서 바다를 보며 해변을 지나서 간다. 집 앞의 바다는 해운대처럼 굉장히 세련되지 않았지만 해수욕장으로 등록이 되어 있어서 버려진 해변 같지 않고 관리가 잘 되어서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아마 전국의 해변에서 카페까지의 거리가 가장 가까울 것이다. 바다는 매일 보면 바다의 변화나 흐름이 매일 다르기 때문에 흥미롭다.


가끔 티브이에서 겨울의 밤바다가 보고 싶다고 바다로 훌쩍 떠나는 장면이 있는데 얼어 죽는다. 밤에 바다를 보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지금과 같은 날의 바다는, 밤바다는 기온이 영하라서 몹시 춥다. 그럼에도 흥, 하며 애인을 졸라 전국의 밤바다로 떠나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이다. 그래 봐야 차 안으로 5분 안에 들어올 것이다.


‘오오모리 가즈키 감독과 나’라는 챕터에는 이런 글이 있다. -오오모리는 효고 현에 있는 아시야 시립 세이도 중학교의 나의 3년 후배이며, 내가 쓴 소설[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영화화되었을 때 감독을 맡은 사람이기도 하다- 라는 문장이 있는데 그동안 하루키의 팬들은 ‘토키 타키타니’와 ‘상실의 시대’가 영화가 되었고 최근에 ‘하나레이 베이’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2007년 로버트 로게발 감독의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가 만들어졌고, 2008년 폼 플린트 감독의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 여자아이를 만나는 것에 대해’가 만들어졌고, 2010년에는 카를로스 쿠아론 감독의 ‘빵가게 재습격’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영화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얻을 수 없다.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하루키스트들이 모여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정말 재미있을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챕터는 ‘올해 밸런타인데이에도 초콜릿을 못 받았다’라는 챕터다. 꽤 재미있는 문장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근처의 가게에서 두껍게 지진 두부와 맨 두부를 샀다. 그 두부 가겟집 딸은 조금 털이 많기는 하지만 꽤 친절하고 귀엽게 생겼다.- 라는 문장이 있는데, 딸을 유심히 하루키는 관찰했다. 그것이 소설가의 일이겠지만(웃음).


털이 많기는 하지만, 이라는 짧은 문장만으로 딸의 생김새를 파악할 수 있다. 두부집 딸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부모님이 두부집을 하고 딸이 잠깐 도와주는 모양이다. 딸이 주인이 아니라 부모가 두부집의 주인이며 딸이 잠깐 일을 도와주는데, 하루키가 보통 두부를 사러 가는 시간(그동안 에세이를 읽어보면)은 이른 오전에 글을 쓰고, 오전에 달리기를 하고, 점심을 먹고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었을 때 집으로 가면서 두부를 산다. 그 시간에는 보통 중학생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두부집 딸은 학생이다. 딸이 털이 많다는 것은, 겨울이라고 했을 때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얼굴만 드러난다고 치면 하루키가 말하는 털이 많고 귀엽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코밑에 난 털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중생은 초등생에서 탈피한, 여고생이라는 본격적인 여성의 길에 들어서기 직전의 모습으로 뭔가 허술하고 묘한 구석을 지니고 있다.


사진을 찍다 보면 그것을 대번에 알 수 있는데, 여학생들의 코밑에 난 털은 보통 고등학교 1학년 정도의 여고생까지는 그 흔적이 보이는데 2학년 정도부터는 얼굴에 신경을 몹시 쓰기 때문에 관리를 하여 잘 볼 수 없고 코밑의 털 때문에 귀엽게 보이는 얼굴은 중학생 정도가 될 것 같다. 아직 여중생들은 코밑에 난 털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들이나 선배 언니들에게 지적을 당하면서 점점 거뭇거뭇한 코밑의 털을 관리하게 된다.


여중생의 인상 사진을 촬영하다 보면 연필로 조금만 칠하면 거뭇거뭇해질 것만 같다. 하루키가 말한 조금 털이 많긴 하지만 친절하고 귀엽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두부집 딸내미는 여중생인 것 같다. 그때 그 여중생 두부집 딸은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까.


하루키의 에세이에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기분 좋아할까.

아니면 털이 많다고 써놔서 흥, 해버렸을까.


어떻든 이런저런 재미있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하루키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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