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누리의 눈에 비친 대감 김상언은 유일하게 할아버지와 연결된 끈이었다. 이 전쟁만 아니었다면 할아버지와 민들레가 필 때 강가에 나가 꺾지를 잡고 놀았을 누리는 헤어져야만 하는 김상언이 미우면서 고맙기만 하다. 민들레가 필 때면 저를 다시 데리려 오시는 겁니까.라고 울먹이며 묻는 누리의 말에 그리하겠다고 말하는 김상언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만감이 교차한다


김상언의 눈빛에서 누리의 할아버지를 죽어야만 했던 자신의 과오를 끝끝내 밝히지 못함을 용서해달라, 나는 그리 할 수밖에 없었음을 용서해달라, 너를 지켜주지 못함을 용서해달라, 나 보다는 날쇠의 곁에 있음이 너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한 나를 용서해달라


김상언과 최명길의 김윤석과 이병헌은 영화인지 소설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김상언은 톨스토이와 비교가 되었고 최명길은 토스토옙과 비교가 되었다. 먹고살기 위해 죽어가면서 글을 쓴 토스토옙이 우아하고 허리를 굽히지 않는 톨스토이의 멋진 글보다 와 닿는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영화가 말미로 갈수록 그렇게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었다


김상언과 최명길은 방법이 달랐을 뿐 같은 길을 갈 뿐이었고 서로를 몹시도 경외하고 있었다. 이병헌의 백두산 고군분투기에서 에이 뭐야, 했지만 남산의 부장들과 남한산성에서의 이병헌은 정말 최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상언이 누리를 끌어안고 보이는 눈빛은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이 모든 잘못된 것들이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 너는 반드시 살아나서 아름답게 민들레 꽃을 피우거라. 그렇게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뼈를 갉아먹던 추위를 몰아내고 산과 들에 꽃을 피웠다


영화 1917에서도 처참하고 또 처참한 전시상황 중에서도 꽃은 피어난다. 황폐하고 무지하고 포탄에 엉망진창이 된 곳에서도 꽃은 피어나고 생명은 태동했다. 김상언은 누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준다


영화는 그 어느 것 하나 오버하는 법이 없다. 소설에 신세를 지는 만큼 소설에게 욕을 들어먹지 않게 꾀부리지 않고 이전의 사극을 우려먹지 않았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왕과 나라를 생각하는 김상언과 최명길의 연기는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김훈의 날이 바짝 선 호흡을 정공법의 영상으로 옮긴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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