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본 시동은 웃길 때 웃음을 확실하게 주는 것 같다. 작정하고 웃기려 들지 않고 진지한데 웃음을 왕창 이만큼 던진다. 물론 웃기려 드는 장면도 많고 오히려 웃음에 방해를 하는 장면도 있지만 시동에 깔린 웃음은 진지한데 웃기는 장면이 잘 깔려 있다
사람의 마음을 열어서 웃음 짓게 하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리하여 영화에서 코미디 장르가 사라져서는 안 되며, 코미디 배우가 손을 놓아서도 안 되고, 코미디언이 존경스럽다. 세상에 코미디가 없어지면 그건 마음이 없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코미디언들은 채플린의 후예들이 아닌가. 채플린 역시 멀리서 보면 희극뿐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온통 비극투성이다
예전 영화 중에 ‘선물’이라는 영화가 있다. 무명 개그맨 이정재와 그의 아내로 이영애가 나온다. 이영애는 점점 죽어 가는데 이정재는 무대에서는 웃겨야 한다. 그래야 하루를 겨우 버틸 수 있다. 관객들이 웃을수록 마음은 크게 울고 있던 개그맨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는 오버가 필요하다. 적정선의 오버. 넘치지 않을 만큼의 오버. 영화도 그렇고 티브이를 보다보면 선을 넘는 오버가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요컨대,라고 적으려고 하니 너무 많다. 티브이에서는 먹는 방송을 비롯해서 현실형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오버가 그 수준을 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오버가 많지만 밉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고 이해되는 게 강호동이다. 50이 넘어서 노란 복장을 하고 구르고 소리 지르고 하는 모습은 굳이 저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잖아, 가족들도 볼 테고, 같은 시선을 무시하고 코미디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편견이지만
강호동의 오버는 20년의 세월동안 학습이 되었기에 강호동의 오버는 호러블이 아니라 친숙하게 받아들여진다. 진정성이 깔려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온통 태우고 난 재와 같이 몸을 던지고 포효를 하고 처절하기까지 하다
배우나 가수는 아픔을 승화시켜서 표출이 가능하다. 그때 그 시련이 동력이 되어서 연기를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라는 말을 재기에 성공한 배우에게 가끔 듣는다. 가수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을 노래로 표현한다. 하지만 코미디언들은 그럴수록 그 사실을 숨기고 웃겨야 한다. 그러니 코미디언들의 처절한 몸부림은 관객들은 웃게 되고 가족들은 울게 만든다
영화 시동은 공감가는 청춘들이 많을 것 같다.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고 하는 택일이와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닌 엄마. 나 아직 안 자는데,라고 말하는 거석이 형과 너 애 아니라며, 그래놓고 이제 와서 도와달라고 징징거려? 니껀 니가 지켜 새끼야,라고 말하는 거석이 형이 괜찮았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