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동화 한 편을 실사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 안에도 동화가 등장하는데 그 동화 한 편을 그대로 실사로 만들고 싶어 만든 영화가 이 영화 ‘감쪽같은 그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이 영화를 동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어색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걷히면서 괜찮아 보인다

 

이 영화는 프란다스의 개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영화다. 비극에 비극이, 거기에 또 비극의 비극이 삶을 전부 덮친다. 희망이라고는 1도 보이지 않는 공주는 불행이 몸을 점점 덮치는 아직 아기인 동생 진주를 업고 희망에서 완전히 멀어진 할머니 말순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희망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불쌍하고 불행한 공주의 가족은 어김없이 프란다스의 개가 떠오른다

 

동화였는데 불편하고 불안했던 프란다스의 개는 결국 불안했던 네로와 파트라슈를 불행하게 하고 만다. 그래서 프란다스의 개를 읽었던 아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어쩌면 요술공주 밍키가 마법의 힘을 잃고 아이를 구해주다 트럭에 치여 죽었을 때 밍키의 영정사진 장면을 보고 전국의 아이들이 충격을 받은 것과 흡사하다. 밍키가 죽어서 충격을 받은 사람은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엄마들도 충격을 받아서 방송국의 전화를 불이 나게 한 적도 있었다

 

영화는 그렇게 불행한 공주의 이야기가 죽 이어진다. 그리고 클리셰처럼 씩씩하고 용감하게 그 불행을 뚫고 나간다. 이렇게 영화 마지막까지 이어진다면 클리셰로 점철된 영화였을 뻔했는데 프란다스의 개와 다른 점이 있다. 불행한 공주의 가족을 제외한 이웃 모두가 공주의 가족에게 친절하고 착한 천사들이다

 

그들은 공주의 가족이 진심으로 불행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 역시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이지만 자신들의 가진 것 안에서 어떻게든 공주를 도와준다

 

공주의 같은 반 친구들도, 공주를 미워하던 여자애도, 진주를 진찰해주던 의사부부도, 식육점 부부도, 담임선생님과 복지사 동광삼촌도 모두가 날개만 없지 천사들이다. 이들이 클리셰를 이상한 방법으로 부셔버렸다

 

말순의 치매는 와타나베 켄의 ‘내일의 기억’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나문희의 그 멍한 눈빛에서 치매에 서서히 잠식되는 자신을 어쩔 수 없어 하는 연기가 깊어서 놀랐다.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치욕스럽지만 더러운 삶에 악착같이 매달리면 해피할 수 있는 동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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