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휘트니는 다큐 영화로 휘트니 휴스턴의 모습을 카메라로 들이대고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휘트니를 알고 지냈던, 휘트니와
가장 가까웠던 주위의 사람들, 그러니까 가족 내지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휘트니의 성장과 나락을 보여주는 영화다. 카메라는 휘트니의 근
거리에서 뱅뱅 맴돌며 조금씩 휘트니를 알아간다. 근접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의 눈을 통해 휘트니를 들여다보기 때문에 더 극적이기도 하고 더
안타깝기도 한다. 덜 극적이거나 덜 불행하지 않다. 영화 속 휘트니는 더 행복하게 보이고 더 불행해진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회사에서 오시는 시간에는 종종 버스정류장까지 마중을 나갔다. 버스정류장 근처에는 레코드점이 있어서 밖으로
난 스피커를 통해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잔뜩 들었다. 레코드점 이름은 ‘나라레코드‘였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신나라 레코드를 따라 한
모양이었다
나라레코드점에서는 늘 팝송이 흘러나왔다. 아버지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스피커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거기서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주인아저씨는 60대로 얼굴에 큰 사마귀가 있었고 천천히 걸었다. 아직 할아버지는 아닌데 할아버지들이
입는 바둑판무늬 같은 조끼를 늘 입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팝에 대한 지식이 많았고 팝을 늘 듣고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서 스피커에 귀를 이렇게 갖다 대고 있으면 운 좋게도 들어오라고 해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어보라고 했다. 그 이후로
주인아저씨와 친해지게 되었다. 팝가수들의 가십도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이 실린 잡지책도 볼 수 있었다. 그때는 집집마다 가구풍 전축이 유행을 하고
있을 때라 엘피 음반을 아버지가 왕왕 사주셨다. 태권브이라든가 패티김이라든가. 하루는 이 노래는 누가 부른 거예요?라고 물었던 게 휘트니
휴스턴이었는데
선물로 받은 미니카세트에 휘트니 휴스턴의 3번째 앨범을 넣어서 들었을 때 그 기분이 미미하지만 아직도 가지고 있다. 뭔가 여기
이곳 어촌에서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휘트니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도 대부분 몰랐지만 미국 땅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이곳의 작은 마을 아시아의
어린 녀석이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와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니, 하며. 매일 헤드 셋을 끼고 휘트니의 노래를
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만큼 힘든 것이 없는데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꽉 움켜잡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다니. 내가 만약
흑인이고 거리에서는 흑인은 늘 핍박당하고 놀림당하고, 커서 취직을 하고 싶어도 제대로 된 일자리는 없고 청소를 하거나 잡일을 해야만 하고.
그런데 교회에 가면 작은 어린 흑인 여자아이가 영혼을 건드리는 목소리로 가스펠송을 부르는 걸 듣는다면 어떻게든 이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흑인이라면 휘트니의 노래를 듣고 그런 생각이 들것만 같았다
그랬는데 영화를 보면 남편의 폭력과 마약으로 점점 망가져가는, 엉망으로 변해가는 휘트니의 모습을 보는 건 힘든 일이었다. 후에
티브이에는 지구촌영상음악도 했었고 음악 감상실에 가게 되면서 풍부한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카세트테이프가 오래가지 못한다고들
했지만 그때 구입한 휘트니의 앨범을 아직도 이렇게 잘 듣고 있다. 늘어짐 하나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