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치는 웃기기만 한 것이 아니다. 웃음과 슬픔이 잔인하게 녹아있고 그 속에는 늘 뼈 때리는 언어가 숨어있다. 우리가 주성치를 좋아하고 주성치의 영화를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5세 아이처럼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성치의 영화는 채플린을 관통한다. 웃긴데 참 슬프다. 여린데 악독하고, 호들갑스러운데 냉철하다. 이런 모순이 가득해서 키득키득하며 웃다 보면 어느새 이상하고 또 이상한 이물감 같은 기분에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겨울이 되면 당연하듯이 삐삐를 보는 것처럼 매년 어떤 시기가 되면 서유기 선리기연을 보게 된다. 선리기연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재미있다는 게 몹시, 정말 이상하다

 

주성치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지난 번에 리뷰를 한 '신희극지왕'이었다. 주성치와 장바이즈의 희극지왕, 리부트다. 주성치의 희극지왕을 보면 알겠지만 주성치는 힘들고 인정받지 못한 무명의 시절이 아주 길었다

 

같이 영화에 뛰어든 양조위, 장국영이나 유덕화나 주윤발이나 성룡은 이미 톱클래스에 올라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는데 주성치만 계속 무명이다. 그래서 배역을 얻으러 가면, 그 정도 해서 안 되면 그만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냐, 같은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 대사는 신희극지왕의 여몽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이 한다

 

여몽은 긴긴 시간 무명배우로 지내면서 괄시와 멸시를 사람들에게 받지만 절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활짝 웃으며 훌훌 털며 일어난다. 이 여몽 역를 한 악정문은 실제로 무명배우였다. 신희극지왕 이전 필모가 전혀 없었다

 

주성치는 자신의 사단이 있음에도 그는 서른 살이 다 된 무명배우 악정문에게 주인공 역을 준다. 실제 주성치가 긴 무명시절의 모습을 악정문에게서 본 것이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악정문은 여몽의 배역을 정말 잘 소화해낸다. 웃기면서 처절하고 슬픈데 밉지 않고 독하게 매달리는데 잘 안되는, 그래서 신희극지왕을 보면 주성치가 주인공이었던 영화처럼 키득키득 거리다가 어어? 하면서 쿡 울게 된다

 

여몽만 무명이 아니다. 여몽의 돈을 등쳐먹었던 남자친구 역시 무명이었는데 배역을 주성치가 주었고, 갑부로 나와서 여몽과 함께 주성치의 희극지왕을 패러디했던 여몽의 친구인 이양역시 무명으로 신희극지왕 이전에 필모가 전혀 없다. 그리고 여몽의 부모님 역시 95년 이후 배역이 없었다가 신희극지왕에 캐스팅이 되었다

 

주성치는 주성치 사단이 있음에도 무명 배우들에게 주역을 맡겼다는 이유로 신희극지왕을 촬영할 당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주성치가 무명배우에게 주인공을 맡겼다며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기도 했다

 

슬프면서 웃기고 황당하면서 이해되고 의자는 앉는 것이 아니라 던지라고 있는 것이며 비극인데 희망적인 주성치 영화를 앞으로 몇 편 볼 수 있을까. 마치 하루키가 유산을 기증한다고 하니 이제 하루키 장편 소설을 한 편 정도 더 보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에 조금은 슬픈 것 같은 감정이 든다

 

심사관에서 매염방은 정말 코믹하게 나오는데 매염방도 일찍 세상을 떴다. 문득 든 생각이지만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보다 어제 100분 토론이 훨씬 재미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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