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빌런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빌런이 더 악독하고 지독하고 독할수록 사람들은 빌런에 이입을 하고 빌런의 매력에 매료된다. 영화 속 빌런이 주인공과 대적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매력적이지는 않다. 그건 최근의 홉스 앤 쇼에서 알 수 있다. ‘홉스 앤 쇼’에서 분노의 질주는 없어졌고 그저 홉스와 쇼가 아이언맨이 된 헤임달과 현피뜨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빌런의 매력이 1도 없었다

 

최초의 질문으로, 우리가 멋진 빌런에 끌리는 이유가 있다. 악당은 기존의 거대한 틀-약한 자, 사회 부적응자, 소외된 자들에 부당한 사회와 그 사회를 감싸고 있는 법규를 깨트리려 하기 때문이다. 빌런들은 영화 속에서 늘 상징적인 건축물을 부수려고 한다. 지 아이 조 1편에서 이병헌이 에펠탑을 반쯤 녹여버리는 장면이 왜 인지는 모르지만 통쾌했다

 

빌런은 우리에게 ‘변화’하되 ‘변함’없기를 보여준다. 빌런은 우리에게 변화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를 준다. 기존의 거대한 틀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이 빌런뿐일까. 그건 아니다. 어제도 일반 사람들이 단단한 벽 같은 검찰 권력을 개혁하기 위해 엄청난 인파로 모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히스레저의 조커에 우리가 매료되었던 건, 빌런인 조커는 부와 명예가 필요 없었고 그것이 조커를 이루는 세계관에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산처럼 쌓인 돈을 그대로 불태워버리는 히스레저의 미친 모습에서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조커는 그저 베트맨이 필요했던 것이다. 배트맨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배트맨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깊고 높은 악당이 된다

 

그 후 10년, 이제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시사회에서 먼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중성은 소거되었다. 흥행은 못 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400만이 넘었다. 예언 실패). 하지만 영화의 깊이는 깊디깊어서 한 번 빠지면 코 앞의 내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둠으로 빨려 들어간다. 조커인 아서 플렉은 3류 코미디언이다. 그 모습은 채플린이 오버랩된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온통 비극이다. 아서 플렉이 점점 증오와 분노, 폭력성에 눈을 뜨고 조커로 변해가는 과정이 실로 피부에 와닿는다

 

호아킨 피닉스가 어둡고 무거운 조커 역을 하기 위해 23킬로를 감량하고 광기 어린 웃음을 짓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유명한 일화이니 찾아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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