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과 미국 사람의 다른 점은 한국인은 탕반문화에서 볼 수 있듯 찌개를 먹을 때, 같이 먹지만 미국 사람은 자기 음식은 자기만 먹는 개인주의가 강하다. 구질구질한 공중 화장실에도 변기 덮개가 구비되어 있을 정도로 그들은 개인주의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과 미국 사람의 아주 비슷한 점은 무엇일까. 그건 슈퍼스티션이다

 

한국의 여고생들이 친구도 선생님도 부모도 의지할 곳이 없으면 삼삼오오 어디를 갈까. 타로점 보는 곳으로 간다. 엄마들이 자식을 위해 가장 돈을 많이 투자하는 곳 중에 한 곳도 점집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흔히 666을 기점으로 재채기를 하면 여기저기서 갓 블레스 유,라고 하며, 사다리 밑으로는 지나가지 않으려 하고 수많은 종교와 미신을 악착같이 믿는다. 그래서 미신이라는 소재를 영화라는 물에 타버리면 대체로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요지가 된다

 

미드소마는 그런 미신에 관한 이야기다. 미드소마는 미드썸머의 스웨덴의 말인데 ‘한여름’이다. 때로는 영화가 시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절망의 시 같다는 생각이다. 희망이 없는 한여름 오후의 찬란함이 내내 펼쳐진다

 

낮이지만 밤보다 무서운 한적한 적막감.

하나씩 없어지는 친구들.

나를 보고 있지만 나를 보는 것이 아닌 시선.

생리혈을 넣은 음료. 씹던 음식에서 나온 음모.

근친상간의 결과인 루빈.

통곡을 하면 함께 하는 통곡.

신경을 긁는 음악.

등이 미드소마를 장식하고 있다

 

영화 내용은 블라블라 생략

 

감독은 전작인 ‘유전’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미드소마 하나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다. 지루할 것 같은 소재와 뻔한 내용으로 지루하지 않게 죽 끌고 간다. 그건 분명 감독의 능력이다. 감독은 유전에서도 그렇지만 복선을 깔아 놓은 걸 좋아한다. 주인공들이 어두운 현실에서 스웨덴의 찬란한 오후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화면을 뒤집는다. 여기에서 관객들은 이미 비현실적인 곳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친구들이 당한 죽음의 방식은 바이킹의 처형 법이다. 요컨대 사이먼이 당한 블러드 이글이라는 방식은 엎드려서 등을 찢고 갈빗대를 척추에서 떼어내 하나씩 뽑아내고 그 틈새로 폐를 끄집어 내어 한 쌍의 날개처럼 만드는 방법이라고 한다. 블러드 이글은 살아있을 때 그 방식을 했다는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서 크리스티안이 본 사이먼의 밖으로 나온 폐가 꿈틀거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이먼은 살아있을까 죽었을까. 크리스티안은 마을에서 환각에 시달리는데 폐가 움직이는 것은 크리스티안의 환각일까. 아니면 환각일 때의 화면과 달라서(환각 장면에는 배경이 일그러지지만 폐가 움직일 때는 배경은 포커스가 선명하다) 사이먼은 그때까지는 숨이 붙어 있는 것일까

 

고립, 허상, 욕망, 증오, 분노, 소속, 그리고 관계에 관한 영화다.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과 관계를 끊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새로운 관계 속에서 관계 맺기 무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무섭고도 절망적인 시 한 편 같은 영화 미드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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