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시는 노예제도를 폐지한다. 노예제도를 폐지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었다. 노예들은 그동안 억압된 자유를 누렸기에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자유인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자유는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지만 그건 이념을 바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권력을 가진 자가 탄생하고 권력을 거뭐 쥔 자가 나머지를 착취하고 목숨을 앗아간다. 그런 모습에 왕은 고뇌를 한다. 위대한 왕은 나라를 구하지만 진정한 왕은 국민을 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을 때 대부분의 노예들이 기뻐했지만 모든 노예가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영화 장고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대저택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노예 중에 권력을 쥔 노예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생활을 했다. 주인과 노예들 중간에서 노예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며 그날그날 주인에게 그 정보를 전달해주기만 하면 된다. 주인과 대등한 음식을 먹고 단체 생활을 하는 노예들과는 달리 자신 만의 방을 가지고 여자들도 거느릴 수 있다

 

대저택을 가지고 노예를 많이 거느릴수록 불안한 농장주가 많았다. 요즘의 직원들이 많은 사장의 심정과 비슷할 것이다. 경쟁회사들은 늘어나지 지난달보다 이번 달 매출이 줄어들면 벌어들이는 수익이 줄었으니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져가는 돈도 지난달보다 적어야 마땅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수치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는 사장의 입장에서는 직원들이 늘어날수록 불안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에 비에 노예들 중에서 관리를 하는 노예는 그저 편안하고 편리한 생활을 했다. 채찍을 맞아가며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매의 눈으로 반항을 하려는, 또는 게으름을 피우는 노예를 주인에게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돈은 계속 굴러 들어와 주인과 비슷한 좋은 옷도 입을 수 있고 마차도 끌 수 있다. 그러니 노예제도를 폐지했다고 해서 구속에서의 해방구가 되는 건 아니다. 자유는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은 노예가 없어졌을까. 2012년 라디오 정희의 사연이었는데, 요코셔테리어 나나가 가출을 한 지 2주째로 미친 듯이 나나를 찾아다니는 남자가 있었다. 가축병원과 애견샵 그리고 동사무소의 민원실에 모두 신고를 한 상태였다. 경찰서에 까지 매일 가서 혹시라도 들어온 소식이 있는지 확인했다. 늘 울상인 그에게 강아지를 찾았다는 소식이 왔다. 일하다말고 달려가서 보니 나나가 맞았다. 그는 바로 전화를 걸어 “사장님, 드디어 사장님의 개님을 찾았습니다“라고 했다

 

1865년 겨울에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현재 이름이 ‘구속’으로 바뀌었을 뿐 노예는 유전자처럼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닌다. 우리는 결국 누군가의 노예다. 가족의 노예, 상사의 노예, 자식의 노예, 애인의 노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시간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자유는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왕좌의 게임에는 그런 모습이 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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