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보다 따뜻하게, 이 영화는 제목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기폭이 굉장히 심해야 하는 인물이 기폭이 없이 고요하게 흘러가는 연기를 한다. 기폭이 심한 마음의 연대기를 마치 기폭이라는 장치를 분리해내서 기폭이 심해야 하는 마음을 꾹 누르는 일상을 보내야 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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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영화 ‘래빗 홀’과 겹쳐진다. 그리고 후반부에 가서는 레이먼드 카버의 ‘별거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으로 관통된다. 너무나 불행한 일을 겪게 되면 현실을 부정하게 되고, 시간이 많이 흘렀을 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듣는 ‘이제 그만 잊자’라는 소리는 칼과 바늘처럼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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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도 쉽사리 위안이 될 수 없는 아픔을 보듬어 주는 건 다음 아닌 라면 한 그릇. 음식은 위로도 되지만 비참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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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세월호 당시 단식농성을 하는 그 앞에서 피자와 짜장면을 시켜 먹던 일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건 타락한 인간의 몰락이 어디까지인가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힘들고 지칠 때 뭐라도 좀 먹고 하라며 음식을 내주던 사람의 위로는 말로 표현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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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빗 홀에서 베카는 상실을 이겨내려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하는 것이 참을 수없이 힘든 것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모가 장애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장애를 가진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내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가 장애가 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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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 슬픔을 받아들일 때 위로는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레이먼드 카버의 ‘별거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을 보면 부부가 제과점을 찾아가 우리 아들이 생일에 죽었다고요,라고 말한다. 그때 주인은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지금 구운 빵이 있는데 좀 드시겠어요, 별거 아니지만 도움이 될 거예요 이럴 때일수록’라고 말한다. 우리 인생에 별거인 것보다 별거 아닌 것이 울게도 웃게도 한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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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뽀로로 목소리의 주인공 이선이 주역이다. 극 속에서도 성우로 나오는데 아들을 잃은 섬세한 연기를 해낸다. 슬픔을 극복하기 보다 인정하는 영화. 짐작보다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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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알트만 감독의 3시간짜리 영화 숏컷이 있는데,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로만 엮어서 영화를 만들었다. 70년대 미국 중산층의 이야기를 잘 섞어 놓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이야기는 ‘별거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이다. 엔디 맥도월이 아이의 엄마로 나오며 다웃 주니어, 줄리안 무어의 아주 젊은 시절의 모습부터 지금 대배우가 된 사람들의 파릇한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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