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상대를 전혀 모른다는 것에서 온다. 가령 세계 챔피언에게 도전하는 도전자는 공포가 덜하다. 그건 챔피언의 스타일을 연구하고 그간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이름도 모르는 신인이 링에 올라서면 그 공포가 더 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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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인간의 초석을 이루는 감정이다. 공포는 인간뿐 아니라 생명을 지니고 있는 생명체는 모두 느끼고 있다. 공포는 우리가 느끼는 그 외의 감정, 기쁘고 슬프고 즐거운 감정보다 더 위에 있는 감정이다. 공포에 비한다면 다른 감정은 감정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가장 큰 감정이다. 공포에 빠져 코마 상태에 있다가 나온 사람들의 공통점은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두려워하는 것,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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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공포는 인간이 지구에 나타난 그 순간 공포를 죽 느꼈다고 한다. 길게 이야기할 순 없지만 프로이트의 글을 봐도 최초 인간이 군락을 만들고 거기서 우두머리를 만든 이유도 우리 인간이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공포의 근원은 생존에 있다. 영화 포스 마쥬어를 보더라도 인간이 생존에 위협을 급박하게 당하게 되면 공포에 뇌가 공격을 당해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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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우리 인간,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의 기저에 깔린 본능은 생명을 유지시키고 죽음을 최대한 배제하게끔 프로그래밍이 되어있다. 이 근본적인 공포를 멀리하고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공포를 잊기 위해 뇌를 속이는 것 역시 어렵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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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떨 때 공포를 느낄까.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에도 그렇지만 가장 근원적인 공포를 느끼는 것은 직접적으로 신변에 위협을 받았을 때이다. 누군가 칼을 들고 위협을 한다거나, 정신질환자가 삶을 포기해 무차별적으로 죽음의 위협을 가한다거나 또 물에 빠져 죽기 직전에 인간은 극한의 공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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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위협이 있다고 착각할 때에도 공포를 느낀다. 간접적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에도 공포를 느끼게 된다. 우리의 뇌는 보이지 않는 상황에 속기 쉽게 만들어졌고 학습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포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방어를 하게끔 한다.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는 하찮은 존재 인간이 공포가 있기에 조심하게 되고 한 번 더 사고하게 된다. 공포는 인간의 방어 기저와도 밀접한 관계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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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지의 세계관에서 공포를 느낀다. 미지의 존재. 최초에 말했듯 아무것도 모르기에 미지에의, 이종의 공포는 클 수밖에 없다. 공포는 찬동하게 되고 동조한다. 친구가 무서워하면 같이 무서워한다. 으슥한 밤에 이야기 잘 하는 사람이 무서운 이야기를 하면 모두가 찬동하게 된다. 공포는 뇌를 속이고 동조를 이끌어 내기에 영화에서의 공포는 모두가 하나로 모으는 찬동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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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지의 존재, 이종계로 인간을 끌고 가는 이야기는 너무 뻔한 이야기다. 이 뻔한 이야기가 엑스파일을 넘어설 수 없다. 두 시간 안에 엑스파일에서 보여줬던 숨 막힐 듯 조여오는 구성과 인간과 이종 사이의 대립과 간극에서 감탄을 불러들일 만큼의 사건을 보여줄 수는 없다. 하지만 너무 뻔하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은 적을 수 있다. 어딘가 놀러 가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보다 라면을 끓여 먹는 것이 맛이 더 좋을 수 있다. 라면의 맛은 너무 뻔하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는다. 너무 뻔하고 또 뻔하기에 맛있을 수 있다. 아니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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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공포영화 같은 경우, 한국으로 넘어왔을 때 정서가 다르다는 점은 공포영화에 빠져들어가는데 부딪히게 된다. 외국의 집은 집 안에 계단도 있고 2층에 복도도 있고 주방도 크다. 그 속에서 구성은 다양하게 이루어지지만 한국인들이 외국의 정서를 받아들이는 것에는 경험이 아닌 오직 상상만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공포가 반감이 된다. 그리하여 외국의 공포영화는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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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개연성, 설득력, 구조, 플롯을 따지지 말고 상업 영화로만 봐라,라고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앞의 것들을 제대로 배치해서 잘 만들어진 영화가 이미 여럿 있기 때문이다. 샤말란의 싸인처럼 작품성이 우수한 영화가 있고, 엑소시스트처럼 관객이 기절을 하고 토하고 걷지 못하는 공포영화가 있었기에 이후 나오는 공포영화는 더 잘 만들어야 한다. 무섭고 공포스럽고 빠져들어갈 긴 영화가 우리는 필요하지, 장황하게 설명이 긴 공포영화를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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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무비가 아닌 이상 감독의 세계관이 클리셰적인 세계관이 아니어야 한다. 그럼에도 다크 스카이는 각본의 힘인지 보는 동안에는, 뻔한 구조와 뻔한 결론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으로 빨려간다. 역시 라면이 맛있다. 보이지 않는 공포 속에서 인간은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에게 동조된다. 빨아들이는 흡입력과 몰입에는 다크 스카이는 꽤 만들어진 영화였다. 허구인 영화는 실제인 인생을 반영하고 공포는 인간의 가장 밑바닥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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