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다시 벚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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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간단하게 사진 몇장과 몇 마디의 글로 이루어 지는 리뷰를 적는 내가 이 리뷰를 쓰기에 몇번째의 시도 끝인지 모르겠다. 몇시간 전에도 리뷰로 시작해 연서가 되었다가 급 내자랑으로 끝나고 말았다. 아마도 이 책은 뒤죽박죽 이러저러 말이 많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흔적을 남기고 픈 마음에 몇자 남긴다.


몇달전부터 사쿠라 호사라의 원서를 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에게 유마언니는 에바님은 이책 못 살거니 제가 사드릴께요라고 했던것 같다. 관심작가의 알람은 지니가 먼저 보냈다. 역시 알라디니는 지니를 잘 둔듯, 인팍은 하루가 늦게 문자가 왔다. 난 그날 바로 몽실서평단에 공지를 올리고 몽실서평단 사상 처음으로 여러분들이 신청을 하셨다. 솔직히 몇명 고르는거 너무 힘들었다. 그냥 가까운 지인 위주로 미미여사님께 보이는 호감도 위주로 책을 열라 급하게 보내는 다음날 몽실에는 유마님이 보내신 벚꽃, 다시 벚꽃이 도착했다. 두깨가 장난아니게 이쁘다. 난 두꺼운 책이 더 좋다. 재미 없으면 벌이 될지 모를 책읽기지만 미미언니의 책이니까 너무나 반가웠다.


벚꽃, 다시 벚꽃의 시대적 배경은 에도시대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이이 다이쇼군[]에 임명되어 막부()를 개설한 1603년부터 15대 쇼군[] 요시노부[]가 정권을 조정에 반환한 1867년까지의 봉건시대. 라고 나온다. 일본이 그저 작은 집단들로 이루어 졌던 오합지졸이던 시대를 벗어나는 시대인 듯 하기도 하고 에도라는 도시 현재의 도쿄를 중심으로 이러어진 시대라 에도시대라 한다고 한다. 내 표현력은 좀 저질인지라..


벚꽃 다시 벚꽃 속에는 일본의 가문, 가업, 핏줄, 유산, 상속, 대리사위 등 그 시대의 문화와 여러 환경적 요인들과 정치 사회가 다 녹아 있다. 최고 도시의 한 쪽방촌 이야기부터 정치 중역의 정치적 신념과 배신, 처벌 등 이 시대 이야기들을 여러권 보고 나니 일본의 역사를 어느정도 알것 같은 느낌이다.  학교다닐때는 관심도 없던 이야기들이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인지하고 이해하는 나 자신이 참 우섭기도 하지만  내가 미워하던 일본도 정치가의 휘둘림과 잘못된 교육으로 희생되는 서민들은 많았다는 것도 어렴풋이 생각하게 하는 점도 있다.


일본은 가업을 잇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가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환경이란 것 또한 인정하게 되었다. 아무리 하찮은 직업이라도 가업을 잇기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많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도 무지 많다. 물론 어디라도 예외는 있지만 특히 어느 사공의 "미쿠라 다리를 지나면서부터 숫자를 세라고 말했다. 노를 크게 한 번 젓는 동안 '일,이' 다음번 젓는 동안 '삼, 사' 하고 세어서 삼십까지 세면 강 복판에 이를 것이다. 노 젓기를 그만하면 배는 자연히 하류로 흘러갈 테니, 거기서부터는 자신의 호흡을 세어 스물에 이를 때 뱃머리를 돌리면 된다. 그렇게 하면 강 복판, 대체로 같은 위치에 머물 수 있다. 라는 말들을 보면 보통의 전문가라면 일일이 세어 보지 않고 그냥 습관 처럼 했을 행동들이 되짚어 생각해 이렇게 표현 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이건 책이나 어떤 공식으로도 나올 수 없는 그날의 바람과 강의 물줄기의 세기 상류의 강수량도 생각하고 한 말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눈으로 사물을 본다. 하지만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은 마음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눈으로 본 것을 마음에 기억하는 일의 축척이며, 마음도 그럼으로써 성장한다. 마음이 사물을 보는 데 능해진다. 눈은 사물을 보기만 하지만, 마음은 본 것을 해석한다. 그 해석이 가끔은 눈으로 본 것과 다를 때도 생긴다.


믿고 의지하거나 사랑하는 하는 사람 앞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무장해제 되어 닫아 놓아던 빚장이 열리며 보여 주지 않고자 했던 무엇인가들이 쏟아져 나오거나 삐죽 튀어 나올때가 있다. 그럴땐 그냥 확 열어 버리고 다음일은 상대에게 맡기는 방법이 최선일지 모른다.  


벚꽃 다시 벚꽃으로 벚꽃 잔치를 벌여 보자는 말을 많이 했지만 난 오랫만에 눈물 잔치를 했다.  참으려고 읽다 멈추다를 했지만 어떤 부분인지 단정 짓기는 힘든 서러움과 모두가 쇼노스케의 삶을 행적을 안 스러워 하지만 어찌보면 가쓰노스케가 더 불쌍하다. 그리고 사토에는 더 더 불쌍하다. 인간이 태어나 죽는 날까지의 삶이란 것이 어찌보면 참 짧은 시간 일 수도 있지만 그 시간동안 많은 희노애락을 지나 오는 중에 이 모자는 과연 어떤 부분에서 웃고 행복하고 사랑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내 옆에 있는 쇼노스케들에게 잘 해야 겠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어이...쇼노스케들 내가 있잖아 ~ 너무 외로워 하지 말기, 너희들은 가쓰노스케보다 훨 행복한거야 내가 있고 바로 옆에 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사토에를 원망도 가쓰노스케를 미워도 하지 말자. 그냥 그들의 삶이고 그들의 사랑이라 우리랑 다르다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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