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날 그녀를 만났다.
저녁을 먹었고
차를 마시러 갔다.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난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남자가 각광받는 시대에서
나같은 남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자 혼자 열심히 떠들었다.
반면에 난
하고픈 말도 없고
말을 하려고보니
자체 검열도 작동한다.
이말을 할까 하다가 관두고 저말을 할까 하다가 또 관두고
뭔가 강렬한 말이 아니면 해서는 안될 것 같은 분위기가
난 참 어려웠다.
다른 연인들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있었더니
감각을 잃어버렸다.
기껏 한다는 말이
"저...영화나 보실래요?"였는데
여자는 너무 늦었다면서 차만 마시고 집에 갔다.
연애란 무엇일까.
밥먹고 차마시고 영화보는 게 연애일까?
아니면 손잡고 팔짱끼고 잘하면 키스도 하는 게 연애인가.
개인적인 견해로는 연애가 "함께 뭔가를 하면서 서로에게 정을 느끼는 것"인데
내 말대로라면 우린 연애를 하고 있는거다.
하지만
과연 그녀가 날 좋아하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별반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럼 난 그녀를 좋아하는가?
그것 역시 자신없다.
데려다주겠다는 걸 마다하고 총총히 귀가하는 그녀를 보면서
난 더이상 연애를 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절망감에 빠져본다.
하지만 세상에는 많은 여자가 있고
그들 중 하나는 외로움을 나와 나누고 싶어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살포시 가져본다.
그날 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럼요, 잘 들어갔어요. 진옥씨는요?"
저녁 때 그렇게 말이 안나오더니
전화를 하니깐 하고픈 말이 많아졌다.
이십분이 넘게 이말저말을 했나보다.
전화기가 뜨거웠다.
감각이 다시 되살아나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