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누가 우승했다는 기사가 나면 본다. 이번 여름리그에서는 다시 코트에 복귀한 전주원의 활약에 힘입어 신한은행이 우승을 했다. 우승팀 감독의 인터뷰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감독이 이영주였기 때문.
내가 아는 친구는 가드를 세종류로 나눈다. 먼저 포인트가드. 경기의 흐름을 조절하고, 득점보다는 어시스트에 주력한다. 팀 득점이 여의치 않을 때는 3점슛을 넣을 수 있는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이상민과 김승현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 슈팅가드. 문경은으로 대표되는 슈팅가드는 말 그대로 외곽슛에 능해야 한다. 마이클 조던 역시 슈팅가드에 속한다.
그리고 세 번째, 무위도식 가드. 센터를 하자니 키가 작고, 포워드를 하기엔 몸싸움이 약하다. 그렇다고 슛을 잘하는 것도 아닌, 쉽게말해 하는 일이 별로 없는 선수를 일컫는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현대의 이영주. 당시 현대 팀에는 유도훈과 김지홍이라는 가드가 있었는데, 이영주도 대부분 이들과 함께 코트에 나섰다. 걸출한 가드가 없으니 숫자로 밀어붙이자는 전략. 이영주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다. 하는 일 없이 공만 쫓아다녔는데, 당시 현대 팀의 성적이 가장 안좋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이영주가 감독을 해서 우승까지 한다니 정말 희한하지 않는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영주는 도대체 뭘 가르쳤을까? 하는 일 없이 어영부영하는 법? 비슷한 생각을 난 유지훤을 보면서도 했었다. OB 베어스(현 두산) 시절 유격수로 나서 실책만 연발하던 그 선수. 86년 해태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은 그 하이라이트였다. 김성한이 친 유격수 땅볼을 유지훤이 아웃시켰다면 해태의 4연패는 없었을 테지만, 유지훤은 희한하게도 그 공을 잡지 않고 기다렸고, 발이 느린 김성한이 1루에 세이프됨으로서 연장전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다. 당시 OB 팬이었던 내 친구가 어찌나 욕을 하던지. 타격도 안좋았고, 그나마도 승패가 갈린 뒤에나 홈런을 치곤 했던 유지훤이 지금 어느 팀의 코치로 가있는 걸 보고 무척이나 놀랐다.
“아니 저 인간이 도대체 뭘 가르친단 말인가? 가랑이 사이로 공 빠뜨리기?”
서정환이 삼성 감독이 되었을 때도 난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나처럼 생각하자면 선동렬처럼 전설적인 인물만이 감독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아, 현역 시절 잘했던 선수가 꼭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 야구의 대표적인 스타 나가시마 시게오가 요미우리를 맡았다 성적부진으로 잘린 것처럼. 그와 반대로 애틀란타의 보비 콕스 감독이나 시애틀을 이끌었던 루 피넬라, 슈퍼스타들을 잘 다독거리며 만년 우승후보로 만든 조 토레 양키스 감독은 선수 시절 화려한 스타는 분명 아니었다. 전설적 투수였던 선동렬이 오승환이나 권오준 등 좋은 투수를 만들어낸 건 인정하지만, 감독으로서의 역량만큼은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듯이 (그렇게 돈을 쏟아부었는데 근근이 1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선수로서의 활약과 감독직을 수행하는 능력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그러니 이영주가 신한은행을 이끌고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고 해도 놀랄 게 없지만, 이영주의 선수 때 활약상을 잘 아는 나로서는 여전히 그에게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건 아마도 한번 머리에 박히면 쉽게 고쳐지지 않는 선입견이라는 괴물 때문이겠지.